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사에 차분하고 꼼꼼하며 철저해서 실수라고는 안 할것 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분들의 눈에 나는 완벽 주의자로 보이는 듯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은 나는 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시간 단위의 일정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안에서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하나라도 틀어지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다. 이런 면만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허술했고 허점도 많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는데도 우리는 늘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라는 좌절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계획하는 법을 알지 못했을 때 주어진 일들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한 적이 많았다. 실패는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소위 말하는 트리플 A형이다. 혈액형 따위로 성격을 판단한다는 것이 탐탁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그것에 수긍하는 편이다. 내 주변의 다른 트리플 A형들과 비슷하게 결정 장애가 아주 심한 편이다. 어떤 때는 고민만 하다 몇 개월을 그냥 보내 버리기도 하고, 급하게 한 결정은 항상 실수를 불러일으키기 일 수였다.
나는 사람들에 눈에 비친 것과는 다르게 매우 소극적인 데다 성격은 급한 편이고 생각도 깊지 못한 면이 많다. 이런 성격 탓에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으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나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의 모습만을 바라보는데서 오는 오류일 수도 있다. 나란 사람은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이런 꼼꼼함과 철저함 따위 들을 발휘하지 않는 날엔 여지없이 실수를 한다.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실수의 순간에 나는 소극적인 성격에 걸맞게 머릿속이 풀가동되어 고민을 시작하면 그 현실에서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었다.
언젠가 시스템 운영을 하던 중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정보를 실수로 다 날려 버렸다. 좀 더 확인하고 했어야 하는데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런 일을 할 때는 매우 조심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그 순간에 마주쳤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할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완전 얼음이 되어 버렸고 내 실수에 용납이 되지 않아 한동안 나 자신을 질책하고 미워했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후일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발판이 되어 주기는 했다. 결과적으로 백업 데이터로 99% 복구를 함으로써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중한 경험이 되어 주기는 했다.
타인이 보는 나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개발자로 개발이라는 업무를 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습관일 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단순히 코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추진 계획을 세우고, 업무를 분석하고, 설계하고, 개발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테스트를 통해 요구사항에 부합하게 만들어졌는지 확인까지 해야 하는 프로세스로 진행이 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잘못이 발생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삶의 습관이 굳어진 것이다 보니 타인의 눈에는 꼼꼼한 사람으로 바라봐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내 귀에 들려올까...
하지만,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꼭 그대로 실천되리라는 법도 없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 아무리 잘 세운 계획이라도 모든 변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계획 없이 추진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작용을 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시련들을 함께 하겠는가? 계획은 그래도 얼마간의 변수들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마주쳤을 때의 시련을 완충시켜주는 스프링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런 계획은 요구라는 놈 없이 만들어질 수 없고 그 요구는 어떤 목적을 가지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그 생각의 목적지 도달하기 위해 기능, 프로세스, 제약사항 등으로 어떻게 언제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요구를 던졌던 사람들이 목표에 잘 도달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 주고 유형, 무형의 형상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계획은 그 어떤 물건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전 사전에 방향이 맞는지 만들어보는 프로토타입과도 같다. 계획을 세우며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대략적인 견본을 만들어 봐야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납기에 맞춰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프로토타이핑을 통해서 요구한 것들이 제대로 구현될지 알 수 있고 빠진 것들을 보완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실제로 물건을 만들면서 다시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개인적으로 계획은 목적지로 정확하게 빠르게 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길을 잘못 들어 돌고 돌며 헤매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우리는 차 안에 보험계약을 하며 받아 둔 지도책 한 권씩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마치 지금 차에 내비게이션이 모두 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절에는 지도책을 펼쳐 목적지를 찾고 가능 경로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출발을 한다. 머릿속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으니 운전하랴 지도책을 뒤지느라 고군분투를 해야 했으며 자칫 잘못하면 교통사고로 이어질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다들 그렇게 살았다.
이처럼 계획은 나의 실수를 줄여주며 조금 더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에게 계획을 세우는 일은 불완전한 나를 조금은 완전해 보이도록 하기 위한 허상과 같은 일상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중요한 일일수록 더욱더 철저하고 디테일하게 계획을 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불안함이 티 나지 않게 만드는 가면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헤 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에 성공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난다면 과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뭐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도 다른 사람들이 쓴 가면에 속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내게 그런 습관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실수 속에서 더 많은 자책과 괴로움을 만나는 삶이었을 수도 있다. 조금은 까탈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직상생활 30년 넘는 삶을 무탈히 살아올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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