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 글을 쓰거나, 걷기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나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조금 더 높은 위치로 도약시키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그 꾸준함을 유지하면 습관으로 들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글쓰기였다.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가지고 브런치에 도전을 해서 두 번만에 합격 통지를 받고 글쓰기 계획을 세우고 매일 쓰는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고, 글감을 찾고, 찾을 글감을 확장해서 이야깃거리를 더 만들어 가며 열심히 매일 쓰는 습관을 들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백지 위 커서의 깜박임은 전두엽을 손상시켜 무의식 상태로 빠지게 만드는 주문이 되어 버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최면에서 깨어나면 하얗게 비어 있는 머릿속처럼 화면 속 하얀 백지도 텅 비어 여전히 커서만 깜박이며 뭐라도 적어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노트북 창을 닫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가기 시작했고, 어쩌다 끄적거려 본 글들은 서랍 속에 가두어 세상과의 연결을 단절시켜 버렸다. 그렇게 가두어진 나의 글들은 언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기다린다고 다가오지 않았고 서랍 속에는 점점 더 많은 글들이 쌓여가지만 그저 잠자는 공주와 같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뿐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글들의 대부분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거나 서랍 속에서 꺼내어지더라도 편집 모드로 열리고, 마치 심판의 날 최후의 처형을 당하는 죄인과 같이 전체 선택을 한 후 삭제 버튼이 눌려질 글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다시 조금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글쓰기 수준은 초등학생의 일기 쓰는 수준과 차이가 없을 만큼 빈약하다. 내가 써온 글들을 보면 날 것 그대로의 문자의 나열이 주를 이루고,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큼 화려한 문장들을 구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때론 앞뒤 문맥이 맞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조차 인식을 하지 못하는 도통 재미나 유익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수준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나의 글쓰기는 어느 순간 백지 위에 깜박이는 커서가 열 일하며 검은색 글자들을 끌어내게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몇 자 적은 글자들은 백스페이스 키가 휘두르는 칼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커서의 움직임, 백스페이스의 만행들은 모두 내 머릿속 전두엽에서 시작하여 손가락 끝으로 전달되어 저지른 나 스스로 만들어낸 만행과 자해였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글들을 하나둘씩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거나 삭제 키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썩은 곳은 도려 내야 했다. 모두 버리지 않고 살려야 할 부분을 찾아 한 점의 살점이라도 살려 내어 그 위에 다시 살을 붙여 보려는 용기도 내어 본다.
최근 며칠을 그런 마음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 며칠 사이 술자리에서 만취가 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숙취로 아무런 손을 대지 못하는 시점까지 커서의 움직임조차 쳐다볼 수 없었지만 지난 며칠의 경과를 보면 나름 만족할만한 복귀를 했다.
얼마 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브런치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기능 중에 “글쓰기 약속 알림”이란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기능에 나의 의지를 맞기고 싶지는 않았다. 나 자신과 약속을 하고 이 글을 혹시나 읽어주신 분과의 약속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