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기예보가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20층에서는 고요하게 내리던 비가 1층으로 내려오니 보도블록에 산산이 부딪혀 나뒹군다.
매일 가지고 다니던 우산은 내려놓고 큰 우산을 꺼내어 들었다.
신발은 젖어도 빨리 마를 수 있는 신발을 신고 양말은 신지 않은 채 비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굵은 빗방울은 우산에 부딪히며 강열한 소리로 내 귀를 자극한다.
길바닥에 내려앉아 삼삼오오 모여있는 빗물을 피해서 발길을 옮긴다.
내리는 비를 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들을 아무리 잘 피해 다녀도 나의 신발과 바지는 마치 리트머스 종이인 양 서서히 스며든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 덜 젖을 수 있겠지만 그런 노력에 들이는 시간이 어쩌면 더 의미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젖을 것인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게 적당하면 되지 않을까?
삶도 너무 아등바등 스트레스받아가며 사는 것보다 적당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비속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