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다른 세상을 보는 창구가 되어 준다.

by 노연석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너무 많이 마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분위기를 깨고 일어설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애매한 자리에서 도망가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와인을 마셨다. 와인은 내 돈 내고 절대 사 먹지 않지만 소주는 팔지 않는 집이었다. 사실 와인에 대해 아는 것도 없기도 하고 와인은 집에서 혼 술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양도 많은데 마시다 그냥 두었다 나중에 마시면 뭔가 찜찜하기도 하고 아무튼 와인은 잘 모른다. 그런데 그날 마셨던 와인은 화이트도 레드도 내 입안에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기도를 넘어 위장으로 흘러들어 혈관을 타고 서서히 번져 나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깨달았다.

각자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늦은 후회는 그날의 분위기도 와인의 맛에 압도 당해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볍고 날아갈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40분 넘게 통화를 했고, 집 사람에게도 그 집에서 마신 와인과 안주에 대해 엄청난 수다를 떨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도 블랙아웃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와인의 병수가 늘어 갈수록 내 인생의 조각들이 조금씩 더 짜 맞춰지고 있었다. 부딪히는 술잔의 횟수가 늘어 갈수록 경험하지 못한 세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붉은색의 강열함을 담은 새로운 경험의 조각들이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몰라 포기하다시피 한 자리를 채워 주었다. 가끔은 부딪히던 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아는 척을 했지만 동문서답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꼬리를 감추기도 했다.


질량 보존의 법칙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많이 마신 양만큼의 술값이 나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거짓이 아니었다. 낯선 이들과의 첫 술자리지만 내가 얻은 인생 맛만큼의 대가는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 그 사람들과의 인연만큼의 가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싼 수업료다.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지만 현실은 가벼워진 주머니를 조금 더 걱정을 한다.


와인으로부터의 블랙아웃을 맛봤던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이 휴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 내 몸속의 장기들과 뜨거운 만남이 식을 줄 모르고 있어 냉수를 쏟아부어 봤지만 열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마치 물 위 뜬 기름불과 같이 분리되고 서로를 밀어낼 뿐이었다.


아무리 좋은 시간이라고 할 지라도 그 뒤에 찾아올 불편한 손님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술을 마시는 일 뒤에 찾아오는 속 쓰림과 두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일을 멈추지 못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것은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만큼 체력이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멈추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통제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똑똑한 사람들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을 만나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후회도 하고, 다음 날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일까? 생각하다 떠오르는 장면들에 창피함 몰려오기도 한다. 늘 떠오르는 술자리의 기억은 평상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쌓아 놓았던 장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해제를 하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날도 같은 자리에서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자리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소통을 통해 나를 채워가는 자리다. 그 자리가 차를 마시는 자리일 수도 있고 술을 마시는 자리가 될 수 도 있고 회사에서 상사나 직장 동료들로부터 이야기나 충고로부터 일수도 있다.


그날 나는 내가 올라선 자리가 부끄러울 만큼 그분들은 열심히 생을 살고 있었고 그에 비하면 내 생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조금 더 고삐를 조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열심히 살아 보려 노력해 봤지만 아무런 관성 없이 쉽게 원하는 괘도로 올라가 지지는 않았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고조가 되었던 것 같다. 와인 빛 농도만큼 짖게 물들었던 것 같다.


스스로 아무리 많은 고민을 해도 답을 찾지 못하는 일은 허다하다. 사람들의 만나고 이야기하는 만남과 소통을 통해서 답을 찾을 때가 많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고민이 있다면 파랑새를 찾아 다니 듯 멀리서 찾으려 하지 말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찾아보는 것을 권장해 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긴장되고 설렌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설레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 인생의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을 맞춰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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