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있어 다음 생을 살아갑니다.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안개와 같이 흩뿌려지고 그 사이로 푸르음 한 하늘이 구름인지 착각을 할 정도로 흐릿하게 보이는 휴일 아침이다.
평소보다 늦은 기상, 일주일 내내 출퇴근 길 지하철역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채 아무런 미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불편하고 불쾌하다. 세상은 온통 최첨단 기술로 무장을 해 있지만 그 수많은 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사소한 일조차 해결할 수가 없다. 그것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매일매일 의문의 한판승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그 상황에 순응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순간순간들은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쌓아 둔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그렇게 일주일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나면 방전이 되기 마련이다. 주말이 없었더라면 주말의 휴식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재충전을 하지 못했더라면 그다음 주를 견디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찡그린 얼굴로, 세상에 불만을 다 가진 사람처럼 불평을 늘어놓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회사에서는 평소보다 많아진 일들과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일들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가고 퇴근 시간이 임박하면 컴퓨터는 끄지도 못하고 노트북 뚜껑을 닫아 서랍 속에 던지듯이 사무실을 탈출하는 일을 반복에 반복을 다하다 휴일에 다다랐다.
평소보다 늦은 아침이지만 가족들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주위에 적막함은 냉장고 소리가 깨주지만 어느새 그 소리조차 적막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건물의 오른편으로 햇살이 드리우며 부서지는 이 시간 아침이 더 익어가고 있다. 햇살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고 차갑게 식어 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함께 깨우고 있다. 오늘은 조금 늦게 햇살을 드리워도 될 것 같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늑장을 부리는 법이 없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하던 대로 햇살은 드리운다.
휴일 아침의 이 여유로움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오늘,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들이 없는 삶을 살아왔더라면 나는 이렇게 온전한 나로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더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순간이 지난 순간들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넘는 내 직장 생활이 무탈하고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여유를 가지를 수 있는 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유로도 인간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려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삶은 불안전하며 마치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과 같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눈 뜨고 나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스트레이다. 그중에 평온함을 주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 의도하지 않아도 귀로 파고드는 소리들, 가만히 있어도 코를 뚫고 들어오는 냄새들과 같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것들에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며 반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때로는 육감까지 나 자신이 나도 모를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살면서 가끔 너무 지쳐있을 때 병이 났던 이유가 비축해 두었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찾아왔던 게 아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 모든 순간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다 보면 당이 떨어지고, 손이 떨리고, 지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럴 때 무언가 보충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휴식이 아닐까. 먹는 것을 통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에너지 훼손은 먹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 휴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는 한데 나는 제대로 휴일의 시간을 활용해서 일주일을 살아갈 비상 에너지를 100% 충전을 하고 있을까? 란 자문에 나는 그렇지는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코로나19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휴일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나를 보고 있으면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기보다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것으로 나를 충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집 밖을 나서면 많이 움직여야 하고 그러면 몸도 피곤해지니 제대로 충전을 하는데 집에서 뒹굴 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들이 반복이 되면 무료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내가 했던 행동은 술을 마시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무료함을 달래 주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날려 버려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 삶의 반복이 더 나를 피폐하게 만들고 나를 지치고 늘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잘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어둠 속에서 전구들이 하나둘씩 켜지듯이 내 머릿속에도 하나의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이런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를 스스로의 우물 안에 가두는 것이며 세상에 더 좋은 것들을 만나고 접해서 그중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 버리고 있다고, 그 기회들이 지금 느슨한 내 삶에 더 많은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현실에 안주해 있다.
어쩌면 그것을 몰랐던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젊은 시절 그래도 지금처럼 비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유대 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찾고 그것이 다시 힘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는 삶을 살았었다. 물론 지금도 동호회 활동은 하지만 예전보다 더 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내게 주어진 주말, 휴일의 삶을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 볼까라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많은 변화를 줄 수 없겠지만 조금씩의 변화를 주어 볼까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의미 없는 시간들부터 줄이고 다른 것으로 전환을 해 보려 한다. 가령 골프는 연습장에 가는 시간을 줄이고, 주말마다 동호인들과 하는 스크린 골프의 시간도 줄여서 다른 것에 소비를 해 보려 한다.
나의 휴식의 시간들이 제대로 가동이 되고 쓸모없이 소비되는 것을 막아 나의 비상 배터리가 100% 충전이 되어 일주일간 나를 향해 달려드는 스트레스들에 모두 소비되지 않아 방전이 되지 않는 그런 제대로 된 휴식의 사이클을 만들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