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이 문을 두드렸다.

타임오프

by 노연석

언젠가부터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최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의 모습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책은 어떤 책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중년 남성의 손에 쥐어진 채 시선을 이끌고 있었다. 우연이겠지만 같은 장소에서 한번 더 그 모습과 마주쳤다.


가끔 지옥 같은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를 반성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 남성이 책 한 권만 달랑 들고 가는 모습이 포착이 되었다. 저 책은 읽으려고 들고 다닌 걸까? 폼일까? 란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전자책을 고집하는 나에게 이런 광경들이 낯설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이 간다. 나도 종이책으로 넘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따라 전자기기가 뿜어내는 블루라이트가 눈을 더 따갑게 만드는 것 같다.


책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아야 하는데 전자책 구독을 4900원에 하면서 보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볼 수 있어서 종이책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핑계가 된다. 물론 신간을 읽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신간이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넘쳐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가끔 종이책을 사서 보면 전자기기를 이용해서 읽는 것보다 집중이 잘되고 책을 읽은 재미도 있기는 한데 읽고 나면 책장에 꽂혀 버리고 마는 신세로 만들고 먼지를 쌓아가는 것을 보는 것도 불편하다.


e-book 리더기를 이용하여 독서를 시작한 지 4년이 넘다 보니 지금은 이게 더 편하다. 책 보다 가볍게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처음 5만 원에 중고 리더기를 구매해서 사용을 해보고 나서 30만 원이 넘는 리더기로 갈아탔지만 그동안 읽은 책을 종이책의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몇 대를 더 좋은 기기로 바꾸어도 될 정도 일 것이다. 덕분에 책장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적으로는 훨씬 이득이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가끔 찾아오는 아날로그 감성 때문인 듯하다.


디지털 화면 위에 디지털 펜으로 필기를 하는 것도 나름 아날로그 감성이긴 하지만 종이 위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써 내려가는 느낌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요즘 회사에서 서랍 속에 묵혀두고 있던 수첩을 꺼내어 기록을 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요즘 e-book, 스마트폰, 패드 등의 디바이스를 보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글자 크기를 크게 하자니 할배가 되는 것 같은 마음이지만 키우지 않는데서 오는 불편함이 더 크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기로 했다.


직업상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살아온 날이 25년도 넘었으니 쉰을 넘어선 나이에 찾아오는 당연한 현상일 것이라 믿어본다.


며칠 전에 산책을 나갈 때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이어폰과 스마트 워치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나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산책을 나간 아내와 이야기를 하는데 더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흐름을 깨는 건 아내가 가지고 나온 스마트폰이었다. 둘 다 가지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좀 더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각종 알림들이 집중을 방해하고 대화의 흐름을 끊고 있지만 또 그것에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흐름을 끊음으로써 일이든 공부든 집중력을 흐트러트려 방해를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


스마트폰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집중해야 할 시간에 꺼 두거나 집중 모드로 해 두며 불필요한 앱의 알람은 꺼두는 것이 일을 제때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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