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토요일
일을 해야 하는데 이번 주말도 비가 온다.
지난 일요일에도 비가 오더니 이번 주말도 내내 비가 온다. 시골에 텃밭에 어머니 일을 도와주려고 왔는데 허탕이다. 어제 금요일 밤 9시 출발, 평소 같으면 오래 걸려도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고향을 3시간 반을 달려 왔거만이 허무함이란...
시골에는 어느덧 모내기가 한창이다. 벌써 그럴 때가 되었다.
벌써 5월이 중반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시골에서 몸과 마음이 떠나 있는 나, 시골에 갈 때마다 다가오는 풍경이기는 하지만 어느덧 볍씨가 싹을 틔워 모내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자라난 것이다. 난 시골에서 자랐고 시골 일들을 도우며 살아왔지만 나의 일이 아니고 내가 주관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나는 농사일은 잘 모른다. 그냥 어깨 넘어 배워웠지만 내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1년 벼농사의 시작은 볍씨를 소독약을 풀은 물에 담그는 일에서 시작한다. 소독을 하는 이유는 볍씨 그리고 볍씨들 사이에 숨어 있는 각종 해충들을 사전에 박별하여 벼로 자라는 동안 해충으로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함이다.
사람도 태어나서 어른으로 성장을 해가는 동안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예방 접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다.
아버지가 마당 한편에 커다란 통에 볍씨를 소독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늘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나도 한몫 거둬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피해가 볼까 생각을 하며 살았지만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결국 들녘의 따가운 햇살을 벗 삼아 들녘에서의 하루를 맞이 하곤 했었다.
나는 가끔 들녘에서 햇살을 맞이 했지만 아버지는 매일 논과 밭에서 뜨거운 햇살을 벗 삼아 안주 삼아 햇살에 달구어진 뜨거운 소주한잔 털어넣으며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마치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농삿 일을 평생 하셨고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다 가셨다.
시골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대에 같은 삶을 영위하시던 분들은 정말 안타깝고 불쌍하고 안쓰럽다. 왜 다른 삶으로 태어났어도 될텐데 굳이 시골에 태어나서 그 모진 고생을 하며 삶에서 한 번도 자신을 위한 행복이라는 것은 느껴보지도 못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오늘도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고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해를 깨우며 논과 밭으로 다시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비가 오는 농촌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오늘도 아버지 생각이 나서 몇 글자 적어 본다. 짧은 삶을 살다 가셨고 그래서 나도 우리 가족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나도 어머니도 누구도 아버지를 더 힘들어하지 않게 하거나 희망이 있는 삶을 만들어 드릴 수 없었기에 어쩌면 그렇게 더 고단한 삶을 사는 것보다 나와 어머니에게 넘겨준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머니의 일터어머니는 아버지와 이 텃밭을 일구며 살아왔던 날들을 매년 추억하고 계신 것인가? 비가 오는 날이면 수술을 했던 양쪽 무릎이 시려오지만 어머니의 일터를 버리지 않는다. 내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매년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내년부터는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지만 내년 이맘때면 또 "밭에 고추 심어야 하는데 언제 시간 되니"라고 연락이 오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