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14살 - 2/2
네가 오던 날, 난 기억해
어느 날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 약간 소란해져서 무슨 일이 있나? 꿈인가? 생각하다가 그냥 잠을 계속 청했다.
"따르릉~, 따르릉~"
아침 일찍부터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집안에는 나와 둘째 동생만 있다.
"여보세요"
큰 어머니시다. 큰집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 해 있다.
"어서 내려와서 밥 먹고 학교 가거라."
"네? 무슨 일 있나요?"
"응, 엄마가 지금 병원에 아기 낳으러 갔어"
"네, 아기라고요?"
아무런 테가 나지 않아 어머니가 임신하신 줄 정말 몰랐다. 배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니,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고 아직 내가 꿈속에 있나 싶었지만 꿈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늦둥이라 창피하셨었는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시고 복대를 하고 다니셨던 같다. 늘 허리 병을 달고 다니셔서 허리가 좋지 않아 그런 줄 알았었다.
15살, 중학교 2학년인 나에게 예상치 못한 뜻밖에 선물, 14살 차이 여동생이 생겼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모든 것이 다 희미하고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내 기억 저편에 모든 걸 다 꺼내어 보려 해도 턱없이 부족한 너에 대한 기억들. 블랙아웃 된 내 기억 속 조각들을 짜깁기해 본다.
고향에서 너와 함께한 시간은 불과 4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들 중에서 가장 짧은 삶을 같이 했던 너와 나의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 난 항상 밤 10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로 주말 빼고는 너와 놀아 줄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와 함께한 시간은 4년이라고 하지만 실제 2년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나는 집을 떠나 사회인으로의 첫발을 딛으며 너와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가끔 지금의 너의 언니와 난 가끔 시골집에 찾아갔었고 아직은 어린 너에게 곰인형이나 소소한 선물을 전해 주던 때가 아마 내가 볼 수 있던 네 어린 시절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너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는 간암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는데, 내 결혼식 날 아버지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큰아버지가 언질을 주셨다. 그런데 그게 간암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아버지는 내 결혼식은 어떻게든 챙겨주고 가시려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시며 결혼식을 좀 서두르셨다. 결혼 후 나는 회사생활과 아버지를 병원 이곳저곳으로 모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시간은 너도 나름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어떤 날은 집에 아무도 없어 큰집에 가 있어야 했을 것이고, 혼자서 집에 있었던 날들도 있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시는 것인지 하염없이 두려움에 기다리고 있었을 너를 이제야 떠올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고등학교 생활도 착실하고 열심히 해 장학금도 받고, 자격증도 많이 취득하고, 아버지는 계시지 않지만 어머니와 함께 너무도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네가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얼마나 더 외로웠을까? 아들놈들이야 있으나 마나, 나는 더욱더 그랬던 것 같고.
지나고 나서지만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고 너는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다고 우리 집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대학 생활을 시작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스스로 학비를 해결하며 어려운 대학 생활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학비 한번 제대로 보태주지 못해 항상 미안했었다. 하지만 대견하게도 혼자 꿋꿋이 학교 생활 잘 마치고 취업도 바로 해서 너의 길을 잘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 났다는 생각을 했었다.
네가 생각보다 결혼을 일찍 하기 했는데 네가 결정한 일중에 어쩌면 가장 잘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너희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잘 만났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며칠 전에는 평생 차를 사지 않을 것 같던 네가 운전면허보다 차를 먼저 구매하고 운전면허 시험은 나중에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며 살고 있는 모습에서 좀 더 너희들의 삶이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고 잘 표현은 하지 못하는 못난 오빠지만 너희 두 사람 행복하게 잘 살기를 항상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너희들도 나름 고민을 안고 살아갈 것이고, 사람인데 가끔은 다투는 날도 생기겠지, 그렇더라도 그 순간들은 이미 모두 지나가 버리는 과거가 되어 버리니 그냥 강물에 흘려보내 듯 떠내려 보내면 된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살면 된다.
어쩌면 네가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창피한 감이 있지만 이 순간 조차의 해프닝이고 지나가는 일 일뿐 一喜一悲 하지 않으련다.
너무너무 오래된 시간이라 사실 너와의 추억이나 기억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너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지 못해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도 나에게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은데 혹시 나 답장 같은 댓글을 달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내가 더 초라 해 질 것 같으니 그러지 마라.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하자.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12 9살 14살 - 2/2
::11 9살 14살 - 1/2
::10 오징어 땅콩 과자
::9 무한헌신, 사랑
::8 평균기온 영하 10도
::7 어릴 적 나의 놀이터
::6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바로 퇴원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2 바다가 보고 싶구나
::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