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첫 생일 케이크

그래도 어머니의 수수팥떡이 더 그립다.

by 노연석

어머니는 내가 10살 때까지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카스테라를 고명으로 만들어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하지만 10살 이후의 생일에는 미역국만 끓여 주셨다.




10살까지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 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기억하기로 부모님, 그리고 더 오래전 세대에는 10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10살까지 수수팥떡으로 액운을 떨치고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 달라는 의미로 해 준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신에 불과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내 어린 시절 하나의 추억이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이었을 것이다.

나는 결정적으로 수수팥떡이든 가래떡이든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떡도, 빵도, 케이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떡은 내 생일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 주지 못했다.


열아홉 살에 첫 생일 케이크. 언제쯤일까? 생일 케이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회사에 입사를 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날 동기들로부터 생일 파티와 케이크를 접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가 19살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열여덟 해를 살아오는 동안 생일 케이크를 접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것은 도시 사람들의 사치라고 생각 했었던 것 같다. 시골의 어르신들이야 생일이면 그냥 미역국과 몇가지 소소한 추가 반찬 정도 였을 것이니 그 밑에서 자라난 우리들은 생일날 미역국이면 감지 덕지였다.


아직 수수팥떡을 해 주는 부모들이 있으려나? 요즘 아이들에게 생일 케이크는 당연한 것이고, 생일 선물도 해 줘야 하고, 친구들과 생파라고 하는 생일 파티도 열어줘야 하니 요즘 부모들은 열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파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나름 많은 신경전을 벌이며 치러진다. 누구, 누구의 생일과 비교를 하게 되니까.

우리 아이들은 이제 어느 정도 성장해서 생일날 친구들이랑 영화를 본다던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든지 알아서 움직인다. 부모가 할 일은 엄카를 주는 풍경으로 또 바뀌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세상도 계속 변한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인데. 생일날은 낳아 주신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이 도리일 텐데... 아이들은 본인 생일을 챙길 줄만 알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른다. 허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뭐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나 지금 몇 살이지? 문득 몇 살인지 생각해보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게 싫어져서 어느 순간 카운트하는 것을 포기한 것 같다. 스마트폰 날짜 계산해 주는 앱의 위젯으로 얼마나 살았는지 설정 해 놓고 살아야 하나...

"으이고 아직 그럴 때는 아니다."

100세 시대,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는데 벌써 이러면 안 되지. 정신 차리고 살자.




요즘, 케이크는 너무 흔하다. 떡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수수팥떡이 조금 그리워지기는 한다. 지금은 수수팥떡과 케이크 중 어떤 걸 받고 싶냐고 하면 케이크보다 수수팥떡일 것 같다. 어머니에게 수수팥떡 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하시려나...ㅋ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바로 퇴원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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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