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어머니, 몸이 부서져도 할일은 해야지.

by 노연석

홀로 되신 지 19년이 되어 간다.


19년 동안 홀로 긴 세월을 홀로 살아오신 어머니. 어머니는 40대 후반쯤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치셨다. 그때 형편상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뇌의 손상으로 말씀도 어눌해지셨고 생각과 말이 다르게 나오는 일이 많았다. 그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어느 정도 회복 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정상인처럼 돌아오지는 못하셨다.




19년을 어떻게 버티고 계신 걸까? 19년 중 어머니는 홀로 사시면서 여러 가지 병에 노출되어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셔야 했었다. 몇 번은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연락조차 주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넘어간 적도 있었다. 결국엔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병중 가장 심각한 병은 늘 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원인은 알 수 없고 이 병 때문에 자주 병원에 입원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난 젊은 시절 헌혈을 기회가 되면 무조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수혈에 들어가는 비용을 많이 절약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다행히 그 병은 없어졌다. 자궁적출 수술을 하셨었는데 그때 엄청난 상실감에 빠져 계셨던 것 같다. 연락을 잘 안 하시는 이모가 나에게 연락을 해서 잘 위로해 드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어머니는 이모에게 본인의 상실감을 늘어놓으셨던 것 같다. 그때 우리 막내가 남자로서 하기 힘든 역할을 나 대신 잘 해 줘서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상처를 치유해 주지 않았나 싶다. 그 수술 후 원인 모를 병도 사라지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병원 생활을 지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강할 때 지키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나이가 들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지병들이 따라온다. 어머니는 고혈압을 가지고 있어 항상 고혈압 약을 드시지 않으면 안 된다. 흔한 지병이나 평생 약을 친구로 두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와 시골에서 농사밖에 모르고 사셨던 분이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집 앞의 텃밭에 매년 고추, 감자, 배추, 마늘, 수박, 참외, 토마토 등등 계절마다 심어야 하는 것들을 빠지지 않고 재배를 하시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동네분들의 농사일도 같이 하며 살아가고 계신다.

결국, 어머니의 무릎 연골은 다 달아 없어지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6년 전 어머니는 왼쪽 무릎에 인공 관절과 연골을 넣는 수술을 했었다. 그러나, 손을 놓지 못한 텃밭과 동네 사람들의 일을 해 주느라 오른쪽 무릎도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왜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어머니는 1년반쯤 전 두 번째 수술 후 1년이 조금 지나 재 수술을 하게 되었다. 한번 수술했던 무릎을 다시 열어야 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한 번도 아니고 세번째 수술이니 오죽하겠는가.

수술 후 무릎을 재활을 하면서 1년간은 조심해야 하는데 어머니는 집안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시고 텃밭으로 주변들의 일터로 또 나가신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자식들이야 농사일 하지 마시라고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신다. 그래서,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한다. 불편한 다리, 몸이지만 움직임을 계속하시려는 생각,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인 것이겠지.


이해는 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혼자서 멍하니 있자니 너무 힘든 생활이고 혼자되어 몸뚱이를 움직이지 않으면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해지고 쓸데없는 생각만 하게 되는 자신이 싫어서 그러셨을 거다. 3번째 수술이 후 몇 개월이 지나 코로나 19로 이제 정말 꼼짝도 못 하고 살고 계신다.


아내에게로 연락을 하셨다. 연락이 왔다는 건... 그런데, 며칠 전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언제 시간 좀 되냐고. 나의 동태를 살피시기 위해 나에게는 연락을 하지 못하시고 아내에게 연락을 하셨다. 봄이 되니 텃밭에 또 무언가를 심으셔야 하는 거다. 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 눈 뜨고 절대 지켜보시지 못하고 계신 거다. 벌써 이쪽에는 감자, 배추, 파를 심어야지 그림을 다 그리고 계실 거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안되시니 내려와서 밭에 거름도 주고 비닐도 씌우고.... 하라고.


아내는 지금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 가족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얼마 전에 장인어른 수술하셨는데도 못 가보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상황을 이야기하니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셨다고 한다.

장인어른도 양쪽 무릎을 다 수술하셨는데 수술 후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너무 많은 활동으로 염증이 생겨 재수술을 하셨다.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의 특징,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 하신다. 결국 수술을 위해 병원이 입원하신 장인어른은 농사일을 다른 사람에게 모두 넘기셨다.


끝이 보여야 찾아뵙지. 코로나 19 확진자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계신 곳은 확진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내가 아무리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잘 생황을 하고 있다지만 모를 일이다. 나도 무증상의 감염자 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은 당장 불효를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빨리 코로나 19가 박멸이 되어야 할 텐데... 조금 더 잠잠해지면 찾아뵈어야겠다.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퇴원을 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2 바다가 보고 싶구나
::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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