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아픈 기억을 안고 산다.
그 아픔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고 견디어 내기 힘들었던 현실이었을 거다.
유난히 무더웠던 2001년 8월의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다.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계셨던 아버지는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임종을 맞이 하셨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시골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정신이 없던 상황에서 아직도 기억이 남는 것은 아버지는 아직 세상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막내딸이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는 막내 딸를 무척이나 기다리셨나 보다. 그해 유난히 무더웠다고 시작한 것은 아버지는 병원 영안실에 계셔야 하는데, 집으로 모셔져 있었다. 시골집에 에어컨도 없고 무더위에 시신이 훼손이 될 것 같아 다시 병원으로 모셨었다.
나와 둘째는 사회생활을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막내는 중학생이고 한참 고민 많을 중2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할 막내는 집에 돌아와서 우리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겠지만 한창 이쁨 받을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는 싫지만 간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는 항상 내가 모시고 병원을 오고 갔는데 시골에 변변한 병원이 없어 수원까지 오고 가며 정신이 없어 둘째도 막내도 잘 챙기지 못했고, 아버지의 상태를 제대로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었을까? 아버지와 막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빛만 주고받으며 작별인사를 했고 이내 아버지는 바로 세상을 떠나셨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모두 보시고 가신 것에 위안을 삼는다.
가끔 씩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고는 한다. 못해주고 가신 것들이 있어서 인지? 어머니가 걱정이 되셔서 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어머니를 홀로 두고 일찍 떠나 신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보다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한번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한 내가 더 원망스러울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로 6개월의 시간을 허락받으셨다.
아버지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민하고 망설이고 있는 동안 아버지가 눈치를 채셨는지 괜찮다며 바다는 됐고 회나 떠다 먹자고 하셨다. 장거리 여행하는 것도 부담인 상황이기는 했지만 나는 바보같이 그러자고 하고 회 한 접시 대접해 드리는 것으로 바다를 대신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부탁인 것을 알면서도...
바다에 모시고 가는 일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걸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와는 바다도 그 어디도 같이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늘 논과 밭으로 나가 저녁에나 들어오시고 농사일이나 집에 키우는 동물들을 두고 어디에 가시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같이 여행이라는 것을 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여행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꼭 같어야 하는데 내가 어리석었었다.
나도 바다가 가고 싶어 졌다. 난 요즘 가족 중 누구든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못 가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도 바다가 가고 싶어 졌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가 보고 싶어 하셨던 그 바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오지 않는다.
망각이, 시간이 다음 기회를 잊히게 한다.
다음 기회에는 후회만 있을 뿐이다.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퇴원을 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2 바다가 보고 싶구나
::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