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

낚시에 중독되다.

by 노연석

바쁜 농사일 가운데 아버지가 유일하게 하시는 취미 생활이 있었다. 물론 바쁜 시간에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시간을 내어 갈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비가 온 후였다. 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셨다가 바로 낚시 장비를 챙겨 강가로 개울가로 나가곤 했다.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다. 나는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웠고 한참 비가 오다 그치면 여지없이 밖으로 나가 땅속에서 지렁이를 캐내고 강가로 향한다. 아버지의 주 낚시터는 한탄강이다. 집에서 1km 내 한탄강이 있다.


한탄강을 한탄강이라고 불리는 이유. 궁예가 도읍을 정하고 태봉이라는 나라 이름을 지었던 곳 철원에 있는 한탄강이다. 한탄강은 내 생각엔 10m 정도 높이에 용암이 흘러서 만들어진 강으로 주상절리, 현무암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궁예가 관심법이니 뭐니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닐 때 한탄강에 나가 현무암들을 보고는 "무좀을 먹는 곰보 같은 땅"이라며 "이제 나의 운이 다했구나"라고 말하며 이곳을 도읍으로 정한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궁예는 왕건으로부터 버림받고 왕건의 군사로부터 쫓겨 한탄강에 이르렀으나 10m 되는 한탄강 절벽에 막히여 결국 멀리 가지도 못하고 십리쯤 떨어져 있는 명성산에 올라 한탄을 했다고 한다. <인용:신관철의 역사 산책 블로그>

그래서 한탄강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전해오는 이야기 일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탄강. 한탄강의 곳곳에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오랜만에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름이 우습기는 하지만, 민충낭, 딴돌낭, 멧돌낭, 비둘기낭 등 더 많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낭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정말 낭떠러지 그 자체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 번도 왜 그런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한탄강을 따라 올라가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만한 순담계곡 그리고 그 위에 고석정이 있다. 아버지는 두루두루 여러 낭으로 낚시를 가셨는데 조금 먼 곳으로 갈 때는 도시락을 싸서 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낚싯대가 있지만 나는 낚싯대가 없어 대나무를 낚싯대로 사용하곤 했던 것 같다.


한탄강 낚시는 비가 온후 가장 적당하다. 비 온 후 한탄강 물은 분노에 찬 듯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그럴 때마다 강바닥을 다 뒤집어 놓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강가로 많이 몰린다. 그래서 사실 좋은 낚싯대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막대기 하나에 낚싯줄을 매달고 납을 달고, 낚시를 달아 지렁이를 끼우고 시뻘건 강물에 드리우고 있으면 찌가 없어도 손맛으로 바로 알 수 있다. 찌같은 건 필요가 없다. 물이 잔잔하지 않기 때문에 찌가 제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유일하게 아버지와 내가 집안일이 아닌 여가생활을 같이 했던 것이 낚시였다. 아버지는 낚시에 매우 소질이 있으셨다. 어디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되는지 마치 물속을 다 들여도 보고 계신 것 같았다. 시뻘겋게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강에서 커다란 게를 잡았다. 바다에서 나오는 대게만 한 커다란 민물 게였는데 평생 볼까 말까 한데 그걸 잡으셨다. 그놈을 집으로 데리고 와 커다란 대야에 넣어 두었는데도 운이 좋았였는지 도망을 갔다. 그런데 도망을 가서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고양이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었을까? 그때는 그냥 도망간 것이 아쉽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살아서 강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10대, 낚시에 중독이 된다.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셨던 만큼 나도 낚시에 빠져 살았다. 중학교 1~3년 여름방학은 동네 저수지에 살다시피 했다. 가끔 친구들이랑 강으로 밤낚시를 가기도 했다. 아버지와 낚시를 다녔던 것도 초등학교 때까지였고 그 후로는 나 혼자 다녔던 것 같다. 한탄강으로 집 앞 개울가로 저수지로 나는 내가 무슨 강태공이나 된 마냥 낚시를 다녔다. 그때 난 내가 해야 할 평생의 낚시를 다 했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낚시와는 이별을 했다. 그 후로 회사 생활하면 한두 번 가봤지만 그게 다였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매운탕 향기가 퍼지던 날에는. 아버지는 낚시를 다녀오면 아버지는 의례 동네 어른들을 초대하시곤 했다. 잡아온 물고기 배를 갈라 내장 손질을 다하고 깨끗하게 씻어서 커다란 솥 한가득 매운탕을 끊이신다. 난 낚시는 좋아 하지만 민물 매운탕은 싫어해서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동네 어른들은 포식하는 날이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낚시를 가는 것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이렇게 한번 거하게 물고기들을 잡아 올 때마다 잔치를 벌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와의 추억 찾기. 며칠 동안 생각을 했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무엇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지 않아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낚시 생각이 났다.


아버지 그리고 나의 유일한 취미생활 낚시. 아버지 덕분에 낚시의 나는 손맛을 배웠고 그것에 중독되어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낚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었다. 그때는 그게 취미생활 뭐 이런 개념이 없을 때였다. 한창 낚시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 집 닭장에 닭들은 늘 포식을 했다. 닭이 물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엄청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나는 매운탕을 먹지 않기 때문에 잡아온 물고기는 닭장 속 닭들에 주는 선물이 되었다. 그땐 닭들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돌아오면 거짓말 같겠지만 나를 반기는 듯했다.




아버지가 남겨주시고 취미로 만들어 줬던 낚시. 이제 아버지와는 낚시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이제는 낚싯대는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관심이 없다. 내 평생 다시 낚싯대를 잡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던 그때로 한 번만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으며 세월을 낚으며 진짜 한량처럼 살아 보고 싶기는 하다.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세월을 낚으며 말이다.


오늘 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 하나를 기억 해 냈다.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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