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터이고 수영장이고 캠핑장이었다.
한탄강은 나에게 낚시터이기도 했지만 여름이면 우리의 캐리비언베이가 되어 주기도 했다. 시골에 워터 파크가 어디 있으며 수영장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수영장은 집 앞 개울가 아니면 한탄강이 우리의 수영장이 되어 주었다. 아주 어릴 때는 개울가에서 미역을 감곤 했지만 조금 커가면서 좀 더 큰 물로 한탄강으로 진출했다.
한탄강에서는 매년 여름 1~2명이 익사하여 생을 마감하곤 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에 매년 여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대부분 외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수영 좀 해 봤다고 괜한 과시를 하다가 익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 우리는 한탄강으로 미역 감으러 갈 때 여러 명이 같이 이동한다. 사실 혼자서 간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고 사람들이 많을수록 위험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한탄강에서 물놀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아닐 수는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다.
한 번은 동네 형들이랑 같이 강으로 수영을 갔던데 그날따라 형들이 강 건너에 있는 백사장에서 놀 거라며 강을 건너가 버렸고, 나이 어린 나와 내 친구 둘, 셋이서 강 건너 형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어 강을 건너기로 했다.
강을 건널 때는 상류에서 물살을 타고 내려가 비교적 쉽게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그런 길은 없다. 강물도 매우 깊어 무섭고 갈 때처럼 물살의 도움을 받아 올 수도 없었다.
건너가서 신나게 놀기는 했지만 돌아올 때는 앞이 캄캄했다. 신나게 놀다보니 체력도 방전되고 수영도 잘 못하니 개헤엄을 쳐 건너다 중간에서 완전 방전이 되어 버렸다. 물 밑을 보니 시커멓고 나는 이제 끝났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신나게 놀다 간신히 마지막 남은 힘들 다 소비한지라 나를 도와줄 수는 있은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내가 물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고 도움을 준 것은 큰집 작은 형이었다. 다행히도 형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발 밑에 바위가 하나 있었다. 간신히 그 바위를 딛고 서 보니 머리가 간신히 잠기지 않을 정도가 되어 숨을 돌리고 쉬었다가 건너와서 요단강을 건너지 않아도 됐었다. 그 후로는 이제 수영을 배워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요령도 생기고 체력도 되니 강을 건너 다니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동네 어르신들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이런 일들은 항상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남겨 두었었다. 큰집 작은 형이 아니였다면 나는 죽음의 문턱 저편에 서 있을텐데... 고맙다는 소리를 한번도 못한 것 같다.
미지의 세계로의 도전 또는 동경이, 이 험난한 길을 잘 못하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했었는지 지금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런 무모한 도전이 나를 더 발전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행동하고, 실천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다시 떠 올려 본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방인
한탄강에 가면 사람이 모이는 곳곳에 의경들이 숨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해 1~2명씩 익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찾아와서 물가로 내 보내고는 한다.
한 번은 우리도 수영을 하러 들어가는데 의경 한분이 오시더니
“너희들 어디 사니"라고 물었다.
“네, 우리 요 근처 마을에 사는데요.”
“아, 그래 알았어 재미있게 놀다가.”라고 말하고 뒤돌아 본인의 자리에 가서 대기를 한다.
그분도 알고 있다 이 지역 아이들은 물에 빠져 죽을 만한 아이는 없다는 것을. 실제로 우리들 중 물에 빠져 잘못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다들 죽을 고비를 한 번씩 넘겨봐서 한탄강에서의 수영은 자만심 같은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제발, 수영 좀 해 봤다고 강에서 바다에서 과욕을 부려 수영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월은 이곳을 어릴 적 나와 우리들의 놀이터에서 이방인의 놀이터로 변화시켰다.
한탄강은 늘 우리들에게 낚시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수영장이 되어 주기도 하고, 캠핑장이 되어주기도 하는 우리의 놀이터였다. 최근에는 주상절리 길이라는 둘레길도 생겼다고 한다. 나도 아직 가보지는 못했는데 한번 찾아가서 사진이라도 좀 남겨 둬야겠다. 어린 시절에는 사진기가 없어 내 머릿속에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데 사진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한탄강으로 내려가는 길들은 아직도 있으려나... 이제 시골 작은 마을에 젊은이라고는 없어서 아무도 다니지 않아 다 없어졌을 것 같은데 궁금하기는 하나 가 볼 자신은 없다.
강 위에서 보는 풍경과 체험, 10m 높이에서 볼 수 있는 낭떠러지 아래 강 줄기, 강 건너에 펼쳐지는 철원평야를 볼 수 있고 전망이 괜찮습니다. 사실 철원 평야는 DMZ 근처로 가야 하지만, 한탄강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평야도 볼만 합니다.
순담계곡, 고석정,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우는 직탕폭포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통일전망대, 제2땅굴, 아이스크림 고지, 노동당사 등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통일전망대~노동당사 코스는 통제구역, DMZ 구역으로 출입제한 구역이어서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며, 고석정에서 출입 등록을 한 후 시간이 되면 인솔 차량을 따라다녀야 해서 자유로운 여행이 될 수는 없지만 한 번쯤 가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 줄기와 함께 하는 풍경과 체험, 여름에는 순담계곡에서 시작되는 래프팅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겨울에는 얼어 있는 한탄강 물 위로 길을 만들어 한탄강 트래킹이라는 프로그램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난 후 그때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7 어릴 적의 나의 놀이터
::6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바로 퇴원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2 바다가 보고 싶구나
::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
<사진 : 의적 임꺽정의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는 고석정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