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헌신,사랑

부모라는 이유로

by 노연석

내가 19년을 살았던 고향은 20가구 남짓 아주 작은 마을이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동네 주민들 간은 거의 가족같이 지내는 편이다.


이 시골마을의 명칭은 "드르니 고을"이다. 내가 살 때만 해도 "고을"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바위에 "드르니 고을"이라는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파트의 경관 조명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이름의 유례, 이것도 어른들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 이기는 한데 마을 이름이 "드르니"인 이유는 이전에 써던 글 중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에도 언급했던 한탄강과 유례가 있고 왕건에게 쫓겨 도망하던 궁예가 이 마을을 들러서 한탄강으로 갔다는 이유로 "드르니"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이런 이야기가 진실인지 궁금하여 친구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맞는 이야기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마을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그리 멀지는 않은 거리에 위치 해 있다. 그땐 국민학교였지만 지금의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동네를 둘러 흐르는 개울을 건너야 읍내로, 학교로 갈 수 있었다.

개울에는 돌다리가 있던 해도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이고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한 상황이 되곤 했었다.


아직 여름방학을 시작되지 않은 시기에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가 찾아오면 온 동네 아버지들이 비상이 걸린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다리는 떠내려가고 없는 상황이라 학교에 보내는 것이 정말 큰일이다. 부모님들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학교만은 꼭 보냈다.

해마다 다리는 어떻게든 다시 놓였다. 하지만 자연은 무정하게도 돌다리, 나무로 만든 다리도 흔적도 치워 버리곤 한다.


그때는 차가 다닐 수도 없지만 버스도 다니지 않아 학교는 늘 걸어서 다녀야 했다. 개울에 놓여진 다리외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마을로 경유해 도보로 1시간 반 가량 소요되는 길이 있다. 그마을에는 커다랗고 튼튼한 다리가 있어 홍수가, 장마가 와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너무 많이 돌아가야 하고 어린아이들이 아침 일찍 걸어가기엔 쉽지 거리다.




그래서 어른들이 선택한 방법은 아이들을 등에 업고 물살을 가르고 걸어서 건네주면 학교에 등교를 하곤 했다

정말 위험천만한, 어쩌면 아버지들이든 아이들이든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누구도 주저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등굣길이었다.


아래 사진은 2018년 베트남에서 홍수로 비닐봉지에 아이를 넣어 등교를 시키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8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에서 내가 겪었던 상황과 별단 다르지 않고 아직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출처:네이버포스트 - 인사이트




몇 년 후 돌다리, 나무다리가 놓이던 곳에서 조금 상류로 다리가 건설이 되었다. 시내로 가는 길은 조금 멀어졌지만 장마철에 아이를 업고 개울을 건너는 위험천만한 일은 없어졌다. 언제가 정말 큰 홍수가 나던 해 그 다리마저 붕괴의 위험으로 지금은 다시 새로운 다리가 놓였고 나름 많은 교통량을 책임지고 있다. 한탄강의 관광객들로 인한 차량 이동이 가장 많다.




그런데, 왜 동네 어른들은 그 위험천만한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긴 것일까? 또 어떻게 한건의 사고도 없었을까? 미스터리한 일이기도 한데 혼자도 중심을 잡고 건너기도 힘든 험난한 물살을 아이들을 등에 업고 건널 수 있었을까? 그냥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일이고 누구도 그런 행동의 실행에 동의를 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을 거다.


그때만 해도 마을의 어른들 중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신 분들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예상컨대 본인들이 못다 한 학업을 아이들까지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살고 있는 이 환경에서 아이들이 계속 자라나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에 학교는 하루도 빠져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셨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도 학교는 절대 빠지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한 번도 결석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시골분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 같은 것은 평생 잘 못하시며 살으셨지만 이런 상황들에 나타나는 무한 헌신을 통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그 시절 동네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바람만큼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시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우리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모두 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헌신으로 인한 결과 물이다.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인데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잊고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곧 어버이 날이 돌아오기는 하지만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해 드려야겠다.


<사진출처 : 네이버 맵-거리뷰 캡처> 사진을 찾다가 포기하고 네이버 거리뷰를 이용하니 지금 가 볼 수는 없지만 바로 확인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다. 마침 촬영한 사진이 봄을 막지 나고 있는 것 같아 그곳에 가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나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기억나는 것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지만 이상하게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9 무한헌신, 사랑
::8 평균기온 영하 10도
::7 어릴 적 나의 놀이터
::6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생활
::5 열아홉 살의 첫 만남
::4 입원하자마자 바로 퇴원하라니
::3 봄이 왔으니 텃밭은 가꿔야지
::2 바다가 보고 싶구나
::1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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