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있는 혼자의 힘으로 끌어낼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안고 살아간다.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무덤덤한 듯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 무게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각자가 느끼는 무게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짊어졌던 무게의 짐도 여러 해 외면하기를 거듭하면서 다른 곳에 잠시 내려 두었지만 그 짐과 연결된 끈으로 인해 그 무게는 언제나 고스란히 느껴진다. 잊을만하면 알아차리게 되고 잊혔다고 생각하면 다시 나타난다. 거리를 두어 조금 멀어지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잠재의식 속에 언제난 자리 잡고 있기에 평생을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짐을 풀어헤쳐 문제들을 하나 둘 해결한다 할지라도 또 다른 무게의 짐이 다시 등위에 얹어질 것은 분명하다.
힘겹게 짊어지고 나아가야 했던 무거운 보따리들을 여러 번 풀고 해결하기를 반복하고 살았지만 그 보따리에는 또다시 새로운 문제들로 채워지기를 반복했었다. 등위에 아무런 짐도 없이 가벼워지는 상태가 된다는 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근심 걱정 없는 하루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어디 있겠는가? 그 근심 걱정의 원천은 짊어지고 있든 어딘가 내려놓고 있던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것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삶은 행복한 삶일까?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서 가슴 벅차고 미칠 것 같이 좋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너무 지루하고 단조롭고 안전해서 즐겁지 않은 삶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보살피고 걱정해 주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들로 인해 그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삶의 무게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에너지가 되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인생에 내가 끌고 가야 할 짐의 무게가 있어 앞으로 나가가는 것일 거다. 어떤 무게의 짐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불가능하지 않을까?
내 삶의 무게는 아직까지는 감당할 만한 것들이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짊어져야 했던 보따리들을 결국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짐을 짊어질 수 있게 했었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 안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고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 안에 조금 특별한 것이 있고, 조금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각자가 가진 감정으로 그 무게가 더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지만 삶은 아무리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 하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 무게를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무게에 집중이 되어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지금 내 삶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 무게의 짐은 건강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둘씩 고장이 나고 있는 신체의 신비를 바라보면서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갱년기 찾아오기도 한다. 음주량의 줄이고 금연을 시도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외면했던 당체크를 다시 시도하기도 한다. 한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 순간이 온다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신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제자리로 돌려놓고 100세 시대에 다른 사람들 만큼은 살다 가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아직 내가 접하지 못한 세상의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모두 경험해 볼 수는 없겠지만 평생직장을 다니며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누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환이 되는 것 같다.
50대 중반에 삶을 마감하셨던 아버지가 요즘은 자꾸 생각이 난다. 그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까웠었는데 나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어쩌면 아버지와 같이 짧은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 뒤에 나의 가족들에게 일찍 그런 슬픔을 가져다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해 져서이다.
그 밖에도 내 삶의 무게의 짐 보따리 속에는 어머니가 계신다. 나이 들고 시골을 벗어나시지 않으려 하시기에 홀로 시골분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계시기에 늘 걱정이 된다. 한 달에 한 번은 찾아뵙지만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하는 것에 죄송할 따름이다. 한해 한 해가 더 해 갈수록 점점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계시기에 우리 가족들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고 더 많이 찾아봬야 하는 시간도 되었다. 내가 그동안 한편에 내려놓고 있던 짐 중 하나인데 이제 더 신경을 쓸대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상황이다. 각자가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겠지만 결국 해결해야 하는 것, 정답은 정해져 있다. 누구나 이런 과정을 접하기 않기를 바라고 만나도라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어떤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공허함이 많은 부분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그 삶의 무게를 견디고 풀어내고 난 후 남은 건 나 혼자이기 때문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추억을 품은 공허함 뿐일 것이다. 그 공허함은 삶을 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