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하고 싶은 것을 쫓아간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상을 재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 많아 잠시 내려두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만 뒤돌아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한 나를 만난다.
소망하는 것들을 만나는 매 순간순간 그러나 여전히 넌 아직 아니야라고 말하며 삶의 우선순위의 저 아래로 내려 보내며 언젠가 그날이 다시 올 거라 생각하며 견디고 버티며 동경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희망을 내려놓지는 않았었다.
언제나 먹고 사느라, 아이들 뒷 바라지 하느라, 부모님 걱정하느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느라 그 희망의 불꽃은 점점 더 작아져 가기만 했다. 그 시간들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쉰을 넘기고 난 후 언제나 아이로 남아 있을 것 같았던 딸들이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삶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 남겨진 것은 집안 가득하게 넘쳐흐르는 공허함이었다. 집안은 절간과 같이 조용해졌고 가끔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삶을 다시 뒤돌아 보게 한다. 어쩌면 이제 고민거리들이 많이 사라져 내 마음에도 봄이 왔으나 창문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따뜻함은 무색해지고 집안 곳곳에 숨어 있던 냉랭한 한기가 그 공간을 메우는 것 같이 차갑다. 그 속에 지난날 하고 싶었던 일들이 고요 묻혀있다. 희망의 촛불은 이미 꺼진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현재의 나는 과거에 내가 미뤄 두었던 것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와 이 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현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현실에 과거를 다시 데려다 놓고 현실로 만들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데 적정한 시기를 넘기고 난 후 지금의 나의 마음은 호수의 물결과 같이 잔잔해졌고 잔잔한 호수를 감싸고 있는 고요가 내 주위를 감싸며 물들여 갔다.
뒤늦게 그때의 그 마음을 현실로 가져와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시도를 하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 봤지만 거기까지였고 이제 와서 내가 무슨 그것을 하나라는 마음이 조금의 용기마저 주저앉히고 말았다.
누구나 꿈을 꾸며 살아간다. 나 또한 꿈은 있었다. 어린 시절 가수가 꿈인 적이 있었다. 가수가 될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음악 선생님께 "이 반에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었고 그 시절 청소년기의 소년 소녀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따라 하고 녹음해서 외우며 노래 부르며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입사 후 회식자리에서 불렀던 노래들도 칭찬은 받고는 했었지만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악기 하나 다를 줄 모르는 내가, 악보도 볼 줄 모르는 내게 그 문턱을 넘기에 턱없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그 보다 그 꿈을 향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 꿈에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기타라도 배우면서 악보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삶의 시간들에 그것을 끼워 넣을 공간이 없었다.
그저 핑계일지도 모른다. 안된다는 생각이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손으로 하는 것을 정말 못한다. 개발자로 살지만 키보드 치는 것도 아직 개발자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개발자의 삶은 넘지 못할 벽을 조금씩 조금씩 굼벵이처럼 기어오르며 꾸준히 하다 보니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기타도 오카리나도 우쿨렐레도 아이들이 배우는 동안 어깨너머 배워 보기는 했지만 혼자서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돈 주고 배울 여력은 되지 않았고 시간도 없었다. 개발자의 삶과 같이 벽을 넘을 만큼 노력을 했더라면 그 벽을 넘어섰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내가 노력하지 못해 그랬었고 미뤄뒀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스스로 벽을 만든 것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여유라는 것이 찾아왔지만 이제 용기가 없다. 작년 목표 중 하나는 가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스튜디오를 찾아 가수들처럼 노래 한곡 녹음 해 보는 것이었는데 노래방을 몇 번가서 노래를 불러보니 예전의 나의 목소리와 리듬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목표에서 아무도 모르게 지워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미련은 남는다.
그래도 아직도 뭔가 해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룰 수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에 완전히 포기할 이유는 없다. 조금의 용기와 시작이 필요할 뿐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땅속에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던 씨앗이 조금 꿈틀대는 듯 내 마음도 꿈틀 거린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씨앗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수 있는 밑거름으로 뿌려 본다. 그래도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전할 것이다. 그 도전이 무언가 큰 꿈을 이루려는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하면 아무리 높은 벽을 만나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덜 상처받고 금방 털털 털어내고 인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도전을 해 보지도 않고 두려움에 사로 잡힐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