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말을 꺼내어 놓다 보면 어느새 포장도 잘 못하는 사람이 말 포장은 근사하게 해 낸다.
의도치 않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말을 통해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
술 한잔 들어가면 포장을 넘어 말로 소설을 쓰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결핍을 감추려고 감싸려는 말들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을 바라보면 한심하다.
밤새 술자리에서 떠들어댔던 말들은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가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고 상대가 만취하여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과묵한 편이다.
말이 많지 않은 것은 대화의 주제를 따라잡을 만큼 머릿속에 자리 잡은 지식들이 없기도 하고 그 시절시절마다 다른 사람들만큼의 경험을 하지 못했기도 하며 수다를 떨 만큼 가까운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주변이 없어서다.
말이 많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입이 터지면 말이 조금 많아지기는 한다. 나 역시 술 한잔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기는 한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역시나 말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를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랄 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포장도 잘 못하고 실수도 많이 하기에 말을 무의식적으로 아끼는지도 모르겠다.
말 포장은 대부분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나마 다행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 포장이 드러나면 다시 볼일이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넘어가 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적으로 말을 더 부풀려 말해야 하는 상황들이 적잖게 있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가능성을 보고 완벽한 것처럼 말로 포장을 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한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가능성일 뿐인 경우가 많은데 직장에서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가능성만 보고 직장인들을 쥐어짜서 가능성이 현실이 되게 만든다.
언젠가 워크숍에서 나의 글이 우수사례로 선정이 되어 발표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업무 관련된 글이지만 그 안에는 말이 글로 포장되어 나열되어 있었고 발표 후 인터뷰에서 역시 거짓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포장을 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그 자리에 참여한 수백 명의 사람들은 나를 처음보고 나를 모르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고 행사 진행자의 취지에 맞는 말들로 포장을 한 것이라 만족해했을지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얼굴이 붉혀진다.
말이라는 것은 진실되어야 하고 내뱉어진 진실된 말과 같이 살아가야 함은 분명하다. 특히 개인적인 관계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자아들과의 거리도 그럴 것이다.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말은 좀 더 세련되게 잘 알아들을 수 있게 가공하고 포장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걸 잘해야 회사에서 살아남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런 면에서는 잼뱅이다. 그렇지만 가공, 포장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포장을 보면서 포장 안에 감춘 미약함은 또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개운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말이라는 것을 포장해야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잘못된 포장과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현실이 현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포장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말을 포장하는 것은 역시 원래의 말을 감추려는 것에 불과하다. 포장된 말은 순간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정직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듯이 정직한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남게 된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면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간 내가 쏟아내었던 말들이 과대 포장은 아니었는지? 온통 거짓은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