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었지만 시간은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다.
거울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의 내 얼굴에 세월의 흔적들이 많이 묻어나 있는 나를 발견하고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조금 서글퍼졌다.
아직도 젊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지만 여기저기 관절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직장에서의 나를 돌아보면 어느새 꼰대가 되어 있다. 스스로 아니라고 부인을 해 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고 내 청춘을 이 회사에 다 바쳤을 뿐인데 이제 스스로를 돌아봐도 젊은 동료들을 따라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꼰대로 보이지 않으려면 라떼를 외치지 말고 현실에 적응하면서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것만 봐도 세월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의 시대로 가져다 놓았다.
세월의 흔적 중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안. 이미 찾아온 지 오래되었고 이런 눈을 가지고 젊은 시절처럼 코딩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폰트 사이즈는 키워야 잘 보인다. 그러나 문자들이 커지면 개발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깨알 같은 글자 크기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너무 커다랗지 않게 사용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모니터에 글자가 아주 커다랗게 성장을 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실제로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고 그분들의 모니터의 글자는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크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치아도 점점 약해진다. 또 치아 파절이 생겼다. 아직 임플란트를 하지는 않았지만 곧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치과에 가면 의사 선생께서 결정을 해 주시겠지만 어쩌다 보니 치과를 찾는 주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세월은 또 많은 사람들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게 세월 탓은 아닐 수도 있지만 계속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다. 그들이 멀어진 것인지? 내가 멀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그렇겠지 세월이 무슨 죄가 있으랴. 가끔 생각나는 친구에게 한 번 얼굴이라도 보자고 연락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쉬운 게 잘 되지 않는다. 생각은 그렇지만 현실은 귀찮다. 그냥 조용히 사는 것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그들을 만나고 나면 나는 뭐 하고 살고 있나라는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일거다.
직장에서 이제 더 올라갈 곳도 없다. 그럴만한 능력도 되지 않지만 이제 우리 같은 50대는 감투도 주지 않으려 한다. 어느덧 변방으로 몰리다 보니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잘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렇다고 꿈도 야망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쫓을 만큼의 열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거다.
아이들은 어느덧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세상의 한 곳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다. 용돈을 끊고 어떤 일이라도 하면서 경험을 쌓으며 독립하기를 희망해 본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조금이라도 버거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직장을 떠나면 사실 무엇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세상을 아직 덜 살아본 아이들이 쉽게 무언가 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본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저 흐름을 타고 무탈하게 바다까지 가보는 거다. 이제 점점 더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다 보니 바다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해야 하지만 그 또한 잘 되지 않는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도 버거워하는 가녀린 인생이라 오늘을 견디어 내고 내일을 고민하는 것조차 벅차다.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고 살던 때가 부러워진다.
하지만 지난 세월이 원망스럽거나 야속하지는 않다.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부자도 아니고 머리고 좋지도 않지만 그래도 세상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생명 연장의 기술들로 아직도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쩌면 정말 아직 오지 않은 인생의 황금기를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