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형을 떠나보내고 만난 친구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꿈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에 나 하고~
캔디는 이 노래를 얼마나 불러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늘 누군가는 캔디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고, 그럴 때마다 캔디는 어김없이 '내 이름은 캔디'를 부르며 슬픔을 이겨냈다. 내일 비록 슬픔에 빠질 지라도 오늘 반드시 일어서리라. 캔디는 그랬다.-뻔히 알면서 빠져드는 만화의 세계-
캔디는 1977년 TV에 방영된 만화 영화 주인공 이름으로 1983년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방영되었다. 캔디의 인기는 나오자마자 하늘을 찔렀다. 한마디로 돌풍이었다. 만화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주인공 캔디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 보단 남자 주인에 열광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중 '테리우스'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어릴 적에 엄마는 내 기분이 기쁜지 슬픈지 금방 알았다고 했다. 나는 슬플 땐 캔디 노래를 불렀고, 기쁠 땐 '요술공주 세리'를 불렀다고 한다. 물론 커서 들은 이야기다. 일부러 생각하며 부른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그랬다고 하니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이상한 것은 기쁠 때의 노래는 잘 생각나지 않았고. 만화 내용 또한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제목만 머릿속에 남았을 뿐이다.
내 어린 시절은 핑크빛은 아니었다. 악당이 나와 함께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 그저 형제 다툼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악당은 내 엄마의 사랑을 혼자 독식하며 나를 매일 괴롭혔다.(악당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할많하않) 어릴 때 흘린 대부분의 눈물은 악당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기분을 잘 안다던 엄마는 악당이 내 얼굴에 수십 개의 상처를 낼 동안 막지 못했다. 이제 나는 미스코리아에 나가긴 글렀다.(뭐 그거 아니어도 기준에 못 미치지만 그랬다)
아이들은 보통 울 때 엄마~하고 운다. 나 역시 그렇게 울었다.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부르며 운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런다. 그런데 엄마에게 혼나거나 악당의 괴롭힘에 못 견뎌 '엄마'를 부르고 울다가 정신인 번뜩 들어(엄마에게 혼나고 엄마를 불러? 너 바보니?) 재빨리 아빠~하고 말을 바꿔 보지만 뭔가 입에 착 달라붙지가 않았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울음도 리듬을 타나보다.
‘엄마’란 소리는 그저 어미를 지칭하는 단어만은 아니었다 그 소리는 서러움도, 슬픔도 위로해 주는 소리였다.
만화 주인공 캔디는 슬픈 일이 생길 때면 거울을 보며 ‘울면 바보야!’라고 속으로 외치며 눈물을 참았다. 바로 그 장면에 내가 꽂히고 말았다. 엄마 없이 고아로 자란 캔디가 불러 본 적 없는 엄마라는 소리 대신 슬픔을 누르는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다. 캔디는 억울한 일이 생겨도 억울하다며 말하지 않았다. 그런 캔디가 어린 눈에도 답답해 보였다. '뭐야! 쟤가 널 괴롭혔다고 말해! 일러바치라고! 어? 뭐야 또 가만히 있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말하면서도 나는 캔디처럼 거울을 보며 울면 바보야를 외쳤고, 거울 속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따라한 행동이었지만 나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 행동 아니었을까.(내가 나를 칭찬합니다.). 캔디 노래도 수시로 불렀다. 노래는 노래 자체로 마음을 순화시키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러고 나면 왠지 씩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반드시 악당을 쳐 부수리라!
지나고 보니 캔디는 나에게 수많은 감정을 가르쳐 주었다. 비록 인간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친구. 적어도 나에겐 친구였다. 캔디가 마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기고, 때마침 캔디는 나에게 다가왔다. 종이 인형을 떠나보내고 만난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