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빌런인가?

이제 악당은 나다

by 부리도

내가 살아온 삶이 만약 글이 된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지금의 나는 이야기 어디쯤에 놓일까. 생각이 줄을 이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이야기의 끝은 해피앤딩이길.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인 나는 매번 악당에게 공격당한다. 게다가 악당의 엄마까지 합세해 나를 종종 위기로 몰아넣는다. 왜 그들이 나를 괴롭히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모 비하를 즐겼다. 그중 나름 약한 걸로 골라보면 짜리몽, 깜둥이, 못난이, 납작코... 이 정도다. 수위가 높은 것은 단어의 의미보다는 욕과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벌써 단어 나열만으로도 기분이 별로다. 그만해야겠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두 살 터울인 악당의 입장을 묻진 않겠다, 그도 나름 할 말이 많겠지만 잘 한건 하나도 없다. 동생이 태어나서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고 모두 폭군이 되진 않는다. 내가 태어나고 나 역시 동생이 생겼지만 난 동생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고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런 악당으로 만들었을까?

참고로 우리 엄마 이름은 ㅎ ㅡㅇ. ㄴ ㅏ ㅁ.(興:흥할 흥 男:사내 남)이다. 아들이 흥하게 나오라 뭐 그런 뜻?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스토리가 짐작된다. 딸을 줄줄이 낳은 집에서 아들을 간절히 바라며 지은 이름. 이런 차별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대체로 크게 삶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는 내가 딸로 차별받았으니 나는 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경우고, 다른 한 가지는 아들 없는 설움을 똑똑히 목격했으니 나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 그런 설움을 절대로 겪지 않겠다는 경우다. 안타깝게도(내 관점에서) 엄마는 후자였고, 그건 불행의 씨앗이기도 했다. 악당은 아니 오빠는 엄마에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였다. 외할머니처럼 줄줄이 딸을 낳지 않고도 아들을 바로 낳아 큰 자부심이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어 준 아들 아니던가!

엄마는 아들의 위치를 더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가 딸이라는 열등 위치를 잊기라도 할까 봐 간혹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집요했다.


-니들 아들 없이 니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니들만 있으면 아빠가 돈 벌어 올 것 같아?


악당은 이렇게 엄마의 아들 자부심이란 양분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힘은 날로 세졌고 여동생들을 괴롭혔다. 그중 한참 어린 동생보다는 내가 주로 악당의 타깃이었다. 그러다 아빠가 집에 계신 날 나를 이유 없이(그냥 거슬려서) 괴롭히다가 악당이 호되게 혼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년이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리지! 나쁜 년! 지 오빠를 꼭 혼나게 하고....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 혼나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러니깐 나는 엄마의 소중한 존재를 혼나게 하는 그런 존재였고, 엄마 입장에서 나는 그들의 눈엣가시였다. 나의 세상은 이랬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세상은 딸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며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지만 내 주식은 그대로였다.(세상 주식의 법칙과 다르지 않음) 예전과 비교해 아동 인권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나왔고, 지금도 수 십 년 전 나와 닮은 어떤 아이가 악당과 힘겹게 싸우며 살아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언제부턴가 내가 주인공 것을 잊었다. 만화와 현실은 달랐다. 내 이야기엔 통쾌한 반전도 복수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져 있었고. 악당이 부러워할 만한 삶도 살아내지 못했다. 이제 나는 악당과 싸울 힘이 없었다. 악당과 악당을 엄청 사랑하는 악당의 엄마는 한 사람의 자존감을 낮추는 최고의 기술을 나에게 발휘했다. 또 악당은 질투심은 굉장히 강해서 내 머리를 자주 때리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악당보다 내가 똑똑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악당의 질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저 적당히 살면 됐다. 그의 기술은 점점 발전해 나중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나를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악당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알아서 살아내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최고의 기술자였다. 악당을 용서하지 않았고 용서할 생각도 없었지만 힘이 빠지고 만 것이다. 나에게 남아있는 건 그저 그 악당과 악당의 엄마에게서 받은 아물지 않은 상처뿐이었다. 세월은 지났고, 이제 그들로 인해 받은 상처는 나의 문제로 남았다. 이제 나의 악당은 나였다.


어른들은 나 요즘 우울해, 네 말에 상처받았어. 하며 기분 전환한다며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곳도 가지만 부모의 세상이 전부인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도 다른 세상으로 가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천덕꾸러기인 내가 그저 역경과 맞서는 방법은 그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주인공의 용기를 흉내 내보며 다른 세상을 동경하며 꿈꿔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로서 나는 만화의 주인공으로 동화책의 사랑받는 공주로, 놀이터의 무법자로 지내며 어린 시절을 통과했다. 그게 그땐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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