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사랑을 만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지 못하고 파리를 떠났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조차 부끄러웠다. 세상 누군들 안 힘들겠는가. 난 어른이지 않은가? 어린아이처럼 징징댈 순 없었다. 나는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 어른인 척 살아가야 했다. 어른이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세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회 부적응자정도 취급을 할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난 사회에 적응되지 못하고 지금껏 살았다. 그곳을 떠나고 2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시 파리로 가기로 했다. 아니 가려고 했다. 나름 준비기간을 거쳤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혼자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보단 둘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그 믿음도 곧 무너졌지만 말이다. 누가 둘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했던가? 그렇게 난 외로움이란 '혹'을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여서 파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혹은 내 인생과 합류했고, 혹으로 인한 문제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는 나의 반려자였고, 난 반려견을 몹시 그리워하는 반려자를 가진 여인이 되었다.
대학 입학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나는 여전히 어색해서 사람들과 섞이지 못했다. 그럴 리 없건만-당연히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텐데-아이들은 서로 친해 보였다. 점심시간쯤, 어색한 시간을 모면하기 위해, (수업 전 먼저 앉아있는 것도 어색해서 참을 수 없어함.) 학교 앞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게 ‘혹’이다. 사랑을 할 때 상대방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부분에 이끌린 다고 했던가. 젠장! 어쩜 그런 부분, 그러니까 그 장소가 문제였다.
사람들은 장난감을 좋아하면 아직 애라고 했다. 이 말에 크게 반발은 못하지만 정답도 아니리라. 나는 타인에게서 '철딱서니 없다'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을 들어보진 못했다, 그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말을 하고 있지 않으면 됐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됐다.
인생의 단짝이라고 생각하고 데려온 '혹‘은 어떤가. 정신연령, 또는 내면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짐작은 갔다. 나의 단짝 반려자 ‘혹’은 장난감만 보면 환장했다. 어릴 때 누구는 장난감이 있었는데 자기는 없었다는 말부터 누가 버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는 둥. 그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반복적이었다. 혹은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음에도 늘 새로운 이야기처럼 말했다. 또 눈빛은 어떤가! 빛나다는 말론 부족했다. 광기? 장난감이 뭐 길래 이리도 사람의 마음에 상처도 주고 어루만져주는가.
혹은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 좀 특이한 장난감이나 발견해야 나를 찾았다. 보여주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는 신호다. 장난감이란 게 혼자 보단 같이 노는 게 재밌지 않겠는가. 그때마다 나는 일부러 무심한 표정을 짓는다. 잘난 체하는 꼴이 보기 싫다. 속으론 나도 다음번엔 혹을 놀라게 할 멋진 녀석을 먼저 찾아내야지 다짐한다. (별 걸 다 다짐합니다.)
우리 둘은 큰 장난감 가게에 자주 갔다. 그곳은 우리에게 놀이터였다. 작은 가게도 구경하길 좋아했지만 아무래도 놀기엔 큰 곳이 나았다. 온종일 장난감을 봐도 혼내지 않는 곳, 그런 곳에서 놀았다 어른이 되어도 혼나는 것은 무서웠다. 우리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거기 들렀다 갈까?”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한다 하진 않아도. 우리의 사랑은, 아니 장난감 사랑은 머나먼 타국에서 시작됐다.
외로움 하나 더해 외로움 둘.
아참! 저 꿈 하나는 이룬 것 같아요. 출구 없는 사랑을 만난 듯. 진짜 출구가 전혀 안 보여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