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가게를 꿈꾸는 이유
누구나 한 번쯤은 장난감 가게 주인을 꿈궈 보지 않았을까? 뭐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말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장난감보다는 만화나 인형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 손을 거쳐간 장난감이라 해봐야 별거 없다. 장난감 가게 주인을 꿈꿀 만큼 멋진 가게를 본 적도 없었기에 꿈을 가질 수 없었다. 혹 어떤 책이나 영화에서 봤다면 장난감 가게에 대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어린 시절엔 그런 책이나 영화를 접하지 못했다. 내가 본 장난감 가게는 그저 허름한 동네 문방구가 내가 본 전부였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사고 싶은 게 항상 있었다. 수시로 들려 뭔가 고르고 뭔가를 샀다. 사고 싶은 것보단 살 수 있는 것을 고르는 시간이었지만 구경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한참을 구경하다 종이 인형 하나를 들고 오곤 했다.(종이 인형-종이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오려서 옷을 갈아입히고 노는 놀이)
수필가 피천득 선생님이 쓴 ‘장난감 가게’라는 그림책이 있다. 선생님의 글에 그림이 함께 실린 책에는 '수필 그림책'이라 쓰여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부드러운 인상에, 교과서에 나오는 ‘인연'의 작가로, ‘수필'이라는 단어를 빼곤 설명할 수 없는 분으로 기억한다. 그게 내 정보의 전부다. 그런데 그분이 장난감 이야기를 글로 쓰셨다고 하니 기분이 생소했다. 늘 어른으로만 살아오신 분 같았기에. 인상이 좀 어른 같아 보였다.(어른 같은 인상이라... 참 이상한 말의 조합이다.) 선생님은 이왕 장사를 하게 된다면 장난감 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사람들이 가게에 오지 않아도 장난감을 혼자 갖고 놀 수 있기 때문이라나! 오! 이런! 이 대목에서 어른들은 뒷목 잡을 것이 분명했다. 월세는? 망하려고 작정했나?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 맞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다르게 걱정부터 앞설 것이다. 그런데 꿈인데 한 번 꾼 들 어떤가?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피천득 선생님도 꿈이라고 누가 뭐라 했냐고 꿈이라고 얘기하신다. 그저 나에겐 한없이 큰 어른처럼 보였던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가슴속에도 장난감은 있었다. 그분에게 장난감은 어떤 의미이며, 장난감 가게는 또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릴 적 장난감 가게 주인은 아니지만 문방구를 드나들며 작은 소망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나를 아껴주고 예뻐해 주는 어른과 손잡고 문방구에 가서 선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어른이 가야만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으니 반드시 어른이어야만 했다. 또 부모님은 안 된다. 그 이유는 아실 거다. 그때 그 사절에 어떤 아이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와 큼지막한 장난감을 사가는 모습을 봤다. 나는 할아버지란 존재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친할아버지는 아주 옛날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고, 물론 외할아버지는 게셨지만 우리 집에 단 한 번도 머물고 가신 적이 없었다. 내가 9살 때 외가댁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할아버지에게 음료수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동생은 사주고 나는 사주질 않아서 울었다. " 쟤는 사주고 왜 나는 안 사주냐고~~~~" 물론 결국 받아냈지만 그 기억은 너무 상처로 남았다. 서럽게 음료수를 받아서 외가댁에 돌아와 엄마에게 바로 일러바쳤다. 할아버지가 쟤는 그냥 음료수를 사주는 데 나는 안 사주려고 했다고, 그래도 내가 계속 사 달고 하니 음료수에 돼지가 들어 있다며 이상한 거 들어 있다느니 유치한 농담까지 하면서 결단코 안 사주려고 했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응~~~ 네 할아버지... 아주 어린애들만 예뻐하지... 딱 5살까지만 예뻐할 걸"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도 예뻐해 준 기억은 없었다.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외가댁에서 지낸 적이 있다. 지금의 동생나이 5살. 한 한 달 정도 그곳에서 지냈던 것 같다.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는 기억에 없었다. 어디 일하러 가셨다고 했지만 딱히 돈도 벌어 오지 않으셨다. 그건 할머니가 한숨 쉬며 말해서 알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5살 때도 나를 예뻐하지 않다가 9살이 되었다고 다 큰 아이 취급했다. 그러니 문방구에 할바버지와 함께 온 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에게 큰 장난감을 고민 없이 사주는 모습은 참 경의롭게 보였다.
행복이라는 것이 모습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도 자꾸 따라왔다. 그것은 내가 종이 인형을 살 때와는 사뭇 다른, 이전에는 본 적 없는, 할아버지와 아이 앞에서 보이는 문방구 주인아저씨의 이상하고 무서운 상냥함이었다. 그 모습은 내 손에 있는 종이 인형을 초라하게 했고, 그날부터인지 나는 한 무더기 종이 인형을 모조리 내다 버렸다. 그 후로 나는 종이 인형을 산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