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날 잡고 정리할 물건들을 죄다 꺼내놓으면, 평소에는 그런 일이 내 인생에서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으면서 어느새 물건과 관련된 추억여행에 빠져버린다. 아련한 기분만 한참 느끼다 물건들을 다시 눈에 안 보이는 구석에 처박아놓는다.
가끔 물건에도 영혼 같은 게 깃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의 부족한 저장 용량을 대신해서 추억 한 조각씩 품고 있다가 어쩌다 서랍 한쪽 구석에서 발견되면 품고 있던 이야기를 자동으로 재생해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을 그려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당시에 엄마, 아빠, 오빠, 나, 할아버지 이렇게 다섯이 살고 있었다. 각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그림을 그렸다. 앞치마를 입고 요리하는 엄마,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아빠, 공을 차는 오빠, 그림을 그리는 나, 낚시하는 할아버지까지.
할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하셨다.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셨고 피부는 항상 햇빛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엄마, 아빠, 오빠, 나를 그릴 때 나는 흔히 '살색'이라고 부르던 연한 주황색으로 얼굴을 칠했다. 할아버지 얼굴은 잠시 고민하다가 갈색으로 칠했다. 내가 가진 지구 슈퍼 색연필 12색 중에선 그게 할아버지의 '살'색과 가장 비슷했다.
그림을 완성한 나는 엄마에게 보여주고 돌아올 칭찬을 기다렸다. 엄마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그리라고 했다. 왜냐고 따져 물으니 할아버지 얼굴을 갈색으로 칠하면 어떡하냐며 야단을 쳤다. 얼굴이 갈색인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얼른 다시 그리라고 했지만 나는 할아버지는 갈색이 맞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오빠는 옆에서 얄밉게 거들었다. "야, 살은 살색이지. 바보냐?" 이번엔 퇴근한 아빠에게 보여줬다. 아빠 역시 다시 그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기만 하셨다.
예술 세계를 이해받지 못해 심통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림을 다시 그렸다. 전과 똑같이 엄마, 아빠, 오빠, 나를 그리고 할아버지를 그릴 차례가 왔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할아버지의 태닝 된 피부색과 가까운 색은 갈색이었다.
'이놈의 김 씨 집안에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갑자기 북받치는 설움에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는 그림 그리다 말고 세상 무너진 듯 서럽게 우는 나를 문방구로 데려가주셨다. 그리곤 원하는 것 아무거나 다 골라보라며, 8년 인생에서 가장 설레는 말씀을 하셨다. 한참을 문방구 탐방을 하다가 작은 색연필 세트 하나를 발견했다. 작고 가벼워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였을까, 표면에 그려진 강아지가 귀여워서였을까 그 몽땅 색연필 세트가 마음에 들었다. 갖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할아버지는 사준대도 사달라고 못하는 손녀에게 이걸로는 네 마음대로 칠하라고 하시며 색연필을 사주셨다. 나는 이 색연필 세트를 아끼는 물건 상자에 넣고 아끼는 그림을 그릴 때만 아껴 썼다.
내가 스물두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송구스럽게도 평소에는 그다지 할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한 번씩 책상을 정리할 때 이 색연필을 보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손녀를 응원해주시던,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이제는 더 비싸고 좋은 색연필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발색도 제대로 안 되는 새끼손가락만 한 이 색연필을 버리지 못하고 매번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다. 아끼고 격려해주시던 마음도 함께 버려져 다시는 떠올릴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아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고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한 번씩 꺼내보곤 한다. 절대 정리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1) 숙제용 그림은 모두의 바람대로 살색으로 완성 후 문제없이 제출했다.
2) 몇 년 뒤 살색은 살색이 아니라 살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