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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Mar 26. 2017

시간이 달랐을 뿐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그는 헤어졌다. 비가 오는 무더운 여름날, 둘이 즐겨 다니던 단골 카페에서.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뒤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엔 단 두 마디면 충분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이 달랐을 뿐. 


그는 그녀는 2년간 짝사랑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 학원에서 만났던 그녀. 평소에 수학을 잘 못하던 그는, 어려운 수학 문제도 막힘없이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모르는 수학 문제를 알려달라는 핑계로 말을 걸었고, 같이 카페를 가고, 밥도 먹었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 아래, 수능 준비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한 그는 그녀를 마음속으로만 가까이하기로 했다. 고된 하루 끝에 침대 위에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몇 시간 동안 매달린 수학 문제, 그녀라면 단 번에 풀어냈겠지 하고 상상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수능을 봤다. 그는 평소에 자신이 없던 수학을 제외하곤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고, 원하던 대학에 수시전형으로 합격을 했다. 그는 들뜬 마음에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대학교에 합격했나? 수학을 잘하던 친구니까 무리 없이 대학 입시에 성공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짤막하게 답장을 보내왔다. '나 재수해' 


그녀는 강원도에 위치해 있는 재수 기숙학원으로 떠났다.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새내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새내기 라이프를 즐기려고 그는 노력했다. 동아리에 가입도 하고, 학교 MT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보고 싶다. 불현듯 머릿속에 그녀가 떠올라 떠나질 않았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무작정 그는 떠났다. 강원도의 기숙학원으로. 주말이었는데, 기숙학원은 수업 중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무려 4시간이었다. 꼬박 4시간 동안 학원 복도에 있는 의자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그는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를 보고 그녀는 놀랐지만 그의 손에 들려있는 귀여운 도시락에 자꾸만 눈이 갔다. 같이 도시락을 먹으며 그녀는 고된 기숙학원 이야기를 하고, 앞날에 대해 걱정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그리고 자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도 그런 그의 모습이 사뭇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가 수능을 볼 때까지 그는 적어도 한 달에 1번은 '면회'를 갔다. 면회를 갈 때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전날 모의고사를 망치거나 가족들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그가 반가웠다. 재수생활의 유일한 활력소라고 생각했다. 그런 밝은 그녀의 모습에 그는 마음이 더욱더 커져만 갔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고백을 할 타이밍을 쟀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장애물 앞에서 그는 자신의 고백을 좀 더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녀는 1년간 더 공부한 만큼 새로운 대학에 대해 더 설렜다. 그리고 그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순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고백을 했다. 비 오는 카페 안에서. 그녀는 놀랐지만 싫진 않았다. 사실 그녀도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의 긴 재수생활을 도와준 귀여운 친구의 마음을. 그래서 그녀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6개월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둘 다 대학생이고, 성인인 만큼 모든 게 자유로웠다. 둘이서 부산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박혀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는 그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됐다. 꿈꾸던 짝사랑이 이루어졌으니,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새벽에 그녀가 아프다면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시험기간만 되면 각종 초콜릿에 영양 식품을 챙겨줬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큰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귀여운 친구일 뿐. 그녀는 걱정이 됐다. 혹시 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이렇게 좋은 사람한테 난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첫 연애는 원래 이런 걸까.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자신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녀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밤늦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편지를 썼고, 주말이 되면 도시락을 쌌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남자는 결국 지치기 시작했다. 이제 남자의 마음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녀 몰래 숨긴 군대 영장 때문이기도 했을까. 남자는 여자로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여자는 눈치챘다. 그가 예전만큼 자신을 좋아하진 않는구나. 그리고 그때 그녀는 느꼈다. 내가 이 남자를 사랑했었구나. 익숙함에 속아 넘어갔구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그를 붙잡기 위해, 그녀는 있는 힘껏 매달렸다. 6개월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하지만 멀어져 가는 그는 매달릴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갈 뿐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예전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그가 챙겨줬으면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눈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비참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린 인연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그들은 카페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이 달랐다. 그는 닫혀있는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사랑을 쏟다가 결국은 포기했다. 그녀는 계속되던 그의 사랑이 그리워서 그를 사랑했다. 결국 그들은 2년 넘게 같이 사랑하지 못했다.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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