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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pr 17. 2017

다중인격, 무의식의 표면화

<23 아이덴티티>가 던지는 질문. 다중인격 장애는 열등한 것인가?


다중인격에 대해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 <23 아이덴티티>는 유달리 흥미 있어 보였다. 특히 주연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제임스 맥어보이라는 사실이 더 끌리게 했던 것 같다. 간단히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사실,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다중인격 연기는 정말 볼만 했지만, 스토리 라인과 결말, 구성이 상당히 미흡했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논하기보단, 이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심리학적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신을 100% 이용하는 다중인격 장애

영화 내내 계속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과연 이런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인 사람들보다 열등한 존재인가. 우리보다 월등한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계속 던진다. 우리의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의식은 정신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인간 정신의 90%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무의식의 비중은 엄청나다. 우린 살아가면서 무의식을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저 평상시 습관이나 생활 패턴에서 무의식이 묻어 나오는 정도. 하지만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은 다르다. 그들의 무의식은 각자 다른 인격으로 표면화된다. 즉, 우린 정신세계의 10% 정도를 의식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나머지 90%까지 이용한다는 뜻이다. 


다중인격 장애, 우월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이런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인간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될 법도 하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지만 무의식에 숨어있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의식으로 꺼낼 수 있다면, 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중인격 장애는 어렸을 적 심한 트라우마를 기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3 아이덴티티> 안에서 케빈의 다중인격 자아 중, 최종 24번째 자아인 '비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학대받고, 상처받은 자들이 더 우월하다.' 학대를 당하고 연약해진 자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다중 인격들.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많은 자아들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자아를 지키고, 더 강해지게 만든다.


감독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봐야 하는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다중인격 장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잘 이해가 안 되는 장면도 많았다. 같은 몸인데, 각자 다른 자아에 따라 갖고 있는 병 또한 다른 것. 어떤 자아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다른 자아는 당뇨병이 없다는 것. 또한,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 이 영화가 논픽션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더니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아무리 인간의 정신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신체를 지배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더 자세히 찾아보니 이 영화의 배경 자체가 픽션이었다. 초능력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가정이 영화 안에 이미 깔려있던 것이다. 좀 더 감독의 영화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볼 걸 그랬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다중인격에 대해 나름 심도 있게 접근을 했으나, 영화 스토리적으론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 다중인격에 대한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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