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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ug 31. 2017

오랜만에 세상의 소리를 듣다

이어폰을 두고 나온 내가 받은 뜻밖의 선물 

내가 어딜 가든지 내 귀엔 항상 이어폰이 꽂혀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사실 그냥 걸어가기엔 심심한 탓이 제일 큰 것 같다. 그리고 듣는 노래 대부분은 EDM(Electronic Dance Music). 아침부터 신나는 EDM을 들으면서 학교를 가면 그날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해도 힘이 저절로 솟는다. 학교를 가든지,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을 가든지 내 귀는 절대로 비어있지 않다. 내 갤럭시 노트가 높은 음향으로 계속 노래를 들으면 청력이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를 하지만 난 기계 따위의 말은 절대로 듣지 않는다. EDM은 크게 들어야 제맛이기에.  


어딜 가나 내 귀엔 이어폰이 꽂혀있다. 쉴새없이 EDM을 뿜어대는 이어폰이

오늘은 1교시부터 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6시 반에 일어나서 7시까지 씻고, 7시 40분까지 아침을 챙겨 먹은 뒤, 7시 50분에 집을 나서야지 완벽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전날 과음을 한 탓이었는지 알람을 무려 5번이나 꺼버리고, 7시 30분에 일어나고 말았다. 아침은커녕, 대충 머리 감고 옷도 보이는 대로 집어 입은 뒤 집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집 앞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나니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굉장히 중요한 걸 놓고 나온 것 같았다. 핸드폰 챙겼고, 민증 챙겼고, 노트북 챙겼고... 도대체 뭘 잊고 나왔을까.


아, 이어폰을 두고 나왔구나. 


이어폰을 놓고 집을 나선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늘 어딜 가든 이어폰은 나와 함께 했었으니까. 정신없이 집을 나온 탓에 그런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이다. 오늘 하루 이어폰 없이 어떻게 버티지. 귓구멍의 공허함을 느끼며 지하철을 올랐다. 역시 출근길엔 자리가 없지. 30분간 따분하게 서서 가야겠구나. 


그러다가 낯선 음성이 지하철 스피커에서 나오는 걸 듣게 됐다. 사실 그 낯선 음성이라는 건 모두가 익숙할만한 안내 방송. 


'이번 역은 뚝섬, 뚝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뭔가 정말 오랜만에 그 방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지하철에서 난 늘 높은 음향으로 EDM을 귓구멍에다가 때려 박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들은 지하철 안내 방송은 맑고 청아했다. 안내방송 전에 나오는 몇 초의 국악은 새삼스럽게 구수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마냥 구수하고 청아한 안내 방송을 귀 기울여 몇 번씩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내릴 역에 도착했다. 출근시간의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역은 대학교 논술 시험장을 방불케 하는 그런 인파를 자랑했다. 항상 이어폰을 낀 채로 사람들 틈 사이로 사람들 틈에 끼여서 밀려내려가다시피 한 그런 곳을 사람들의 한숨 소리와 짜증 소리를 들으며 내려가 보니까 더욱 생동감(?) 있었다. 클럽 노래를 들으며 계단을 '휩쓸려' 내려갈 때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만 짜증 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그런 동질감도 괜스레 느껴지기도 했고. 


학교까지 걸어 올라가면서 들리는 다소 난폭한 자동차 소리, 친구들과 떠들면서 등교하는 고등학생들 목소리, 힘 빠지는 목소리로 광고지를 쥐어주며 새로 개업한 식당에 꼭 한 번 와보시라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소리들이 내겐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가끔은 일부러 이어폰을 두고 나올 생각이다 

이어폰을 두고 나온 탓에,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동 떨어진 게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세상이 내게 어떤 소리를 내도 이어폰으로 완전 차단했던 나였다. EDM 노래를 들으면서 지루한 등굣길을 신나는 클럽처럼 바꿔버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냥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내는 소리도 많이 들어봐야 나도 세상에게 말을 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들어줘야, 세상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겠지. 가끔은 일부러라도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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