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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Sep 15. 2017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의 풍경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가 관찰한 도시와 사람 <풍경의 감각>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서울이라는 곳을 벗어나질 못한다. 24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기 때문에 서울은 그 어떤 곳보다도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고,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몇 년을 서울에 '갇혀서' 억지로라도 서울에 익숙해진 우리와는 분명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외국인에게 보일지는 상상할 수 없다. 서울 여자와 파리 남자가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기록한 책 <풍경의 감각>은 한국 여성과 프랑스인 남성이 바라본 서울과 파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프랑스엔 '등산'이 없지만 서울에는 있다

프랑스에는 '등산'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사실 우린 등산이란 단어가 축구, 농구만큼 익숙한 레저 용어인데 말이다. 파리에는 오를만한 높은 산이 별로 없어서 등산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다고 한다. 오를만한 곳은 그저 높은 에펠탑뿐. 반면에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서울만 하더라도 오를만한 산들이 몇 존재한다. 주말만 되면 등산복 차림으로 밝은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이자 프랑스인 남자 티에리는 이런 한국 사람들의 등산하는 취미를 고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고 이해했다. 사방이 높은 건물들로 막혀있는 서울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일만한 곳은 그 빌딩들보다도 높은 산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등산을 꽤 좋아하는 이유 역시 티에리의 생각과 같다. 


때론 파리보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서울 

하지만 티에리에게 서울이 긍정적인 이미지로만 다가간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교회는 서울에 수없이 많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 뜻은 아무 때나 들어가서 앉아서 쉰다던지, 기도를 하고 나오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정한 예배 시간이 존재하고,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서 함께 나오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프랑스의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듯이, 혼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존재한다. 티에리는 서울 교회들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이와 반대로 서울의 사찰들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꽃 하나도 두 나라에선 다른 느낌을 지닌다

또 다른 저자이자 서울 여자인 이나라는 같은 말이 두 나라에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묘사한다. 그녀는 많은 대상에 초점을 맞췄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꽃'에 초점을 맞췄던 부분이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우리나라의 꽃은 자유로움이 덜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애국가로 '무궁화 삼천리'를 수십 번 부르면서 무궁화는 어느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꽃이 되어버렸고 애국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 장미는 서양을 상징하는 역할이 컸다. 이런 식으로 무궁화=애국, 장미=서양이라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누구나 조금씩은 지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좋은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꽃을 자주 선물하고,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꽃을 선물할 때에도 커다란 화환으로 보내는데, 꽃보다는 누가 그 선물을 보내는지 표시되어 있는 카드가 더 이목을 끌기도 한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꽃이 참 자유롭다고 한다. 꽃집에서도 꽃다발의 꽃들은 같은 부류의 예쁜 꽃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제각기 다른 꽃들, 심지어 풀로 이루어져 있다. 축하나 애도를 위해 꽃을 보내는 풍습은 없지만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땐 꼭 꽃을 사 간다고 한다. 꽃가게에서도 제철 꽃들이 주를 이룬다. 꽃의 상징적 의미보단 그저 꽃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집중할 때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날 수 있다.


<풍경의 감각>을 읽으면서 사실 프랑스인 저서 티에리에게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프랑스에서 몇십 년을 살았던 티에리의 눈에는 당연히 서울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둘을 객관적으로 두고 묘사하는 느낌보단 은연중에 서울을 비판하는 느낌이 강했다. 더욱 답답했던 건 그 말에 제대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도 평소에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점을 티에리가 외국인의 눈으로 정확히 집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반박하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나라 욕해도 내가 욕한다'라는 마음 때문일까.   


나도 직접 보고 느껴서 제 2의 <풍경의 감각>을 써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목표가 생겼다. 서울 남자인 나의 눈을 통해서 파리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분명 서울보다 좋은 점이 있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프레임을 통과한 풍경이 아닌, 날 것의 풍경을 느껴보고 싶게 만들어준 <풍경의 감각>. 나도 언젠간 제2의 <풍경의 감각>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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