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 루벤은 자기 세상(어둠)에 갇혀 지내다 책 읽어주는 여인 마리를 만나 타인의 눈(마리의 시선)으로 사랑에 눈 뜬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숨긴 채 마음을 닫고 살던 마리도 마찬가지다. 학대받으며 자란 마리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세상(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친다. 시력을 잃은 소년 루벤은 육신의 눈 대신 마음의 눈으로 마리를 본다. 루벤은 손끝을 더듬어 마리를 보(만지)고 타인의 시선이 보지 못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면서 사랑에 빠진다. 루벤이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대로 안과 수술을 한 루벤은 눈을 뜨(시력을 회복하)지만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마리(그녀는 루벤이 원하는 여인상을 연기했다)는 몰래 도망친다. 눈을 뜬 루벤은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마음의) 맹인이 된다. 육신의 장애는 때로 육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신의 섭리. 시력을 회복한 루벤이 눈에 붕대를 감고 면도하는 장면에서 우리 눈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는 역설적 진실을 보게 된다. 마리가 남긴 편지를 보고 루벤은 그녀가 '사람들 눈이 싫어'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타인의 눈을 버리고 자신(마음)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보기 위해 고드름으로 눈을 찌른다. 루벤은 육신의 눈을 잃은 대신 다시 심미안(審美眼)을 얻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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