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가게 A Corner Shop 2018

자본주의 시스템을 멈출 수 있을까?

by 타자 치는 snoopy

아이들은 실수를 하면서 배운(자란)다. 아이냐 아니냐 여부는 독립적이냐 아니냐로 결정된다. 정신적 자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요건은 경제적 독립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모퉁이가게>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거부한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소풍가는 고양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청년'과 '경제적 자립'의 문제는 사라지고, 도시락 배달 업체 <소풍가는 고양이>의 대표 '씩씩이(박진숙)'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만이 남아 아이들 이야기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한다. 러닝타임 73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나도 영화가 던진 질문(1. '홍아'와 '원주'는 어떻게 됐을까?, 2.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멈출 수 있을까?)은 끝나지 않는다.



<길모퉁이가게>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1도 없었'던 이숙경 감독이 친구 '씩씩이'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소풍가는 고양이>의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을 '마구잡이'로 '따라 간' 영화다. 2017년, 창업 후 처음으로 연 매출 5천만 원을 달성했다는 이야기(갈등)의 정점에서 영화는 환호나 감동 대신 컨베이어 시스템과 톱니바퀴(청년 노동자)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를 보여주며 갑자기 끝이 난다. 사회적 기업의 성공 미담(해피 엔딩)을 거부하고 기-승-전-급 하강의 열린 구조를 택한 결말은 <인간극장>류의 감동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가 남긴 긴 여운은 시계 제로의 암울함과 설명되지 않은 불쾌함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삶의 무늬를 지닌 채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들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숙련되는(전락하는) 동안, '길모퉁이가게'가 '빈틈없는 기업'이 돼 가는 동안, 적자생존의 정글에 버려진 아이들은 운명 앞에 굴복하는 고대 비극 속 영웅들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절벽 앞에서 절망한다. 영화 속에 기록된 아이들의 변화는 '성장'이 아니라 '파국'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계속된 GV에서 (촬영, 편집 등) 영화의 기술적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길모퉁이가게>는 영화보다 영화에 담긴 현실이 도드라지는 영화다. 이숙경 감독님은 GV 답변을 통해 '인물을 따라가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관객 입장에서 흥미를 느끼는 드라마의 재미는 결국 영화 속 캐릭터(홍아, 씩씩이, 쫑, 매미, 원주) 사이의 갈등과 변화에서 나온다. 편집은 시간과 관계의 경험이 쌓여가는 동안 생겨난 고민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철저하게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자의 개입을 최소화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같은 영화와 달리, <길모퉁이가게>는 화면 바깥에서 화면 안으로 난입해 들어오며 질문하는 감독의 보이스 오버를 통해 3인칭과 1인칭 관점이 뒤섞인 혼돈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GV에서 밝힌 대로 '친구의 고민과 질문'을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사회적인 논제로 만들어 함께 나누고 싶어서 <길모퉁이가게>를 만든 것이라면, 그 목적은 120%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길모퉁이가게>는 결론이나 대안의 영화가 아니라 '과정'과 '미완성'의 영화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심지어 '씩씩이'마저도)은 미생(未生)이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직업 수련 인턴제를 통한 대안 교육은 여전히 나아갈 곳을 잃고 부유한다. 사회적 기업 역시 일반 기업과 같이 이윤 추구를 하는 시스템의 원리는 같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순간은 (말하는 이나 보는 이나) 몹시 괴롭다. 이제 가난의 징표는 누더기 옷이 아니라 '출퇴근하는 거리'라는 영화의 지적은 뼈를 때리고, 방황하는 청춘들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아무리 망가진 시스템이라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법이 없고 자본의 속성과 구조는 콘크리트 벽만큼 단단하다.



그래도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길모퉁이가게> 같은 영화를 만들고 보여주려는 사람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보면서 질문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며 '못 견디겠다'던 '홍아'는 <소풍가는 고양이>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원주'는 퇴사를 했다고 한다. 인턴십 첫날부터 지각을 했고 근무 내내 반복적 지각과 업무 수행 능력의 비효율성을 지적받았던 원주의 지각 이유가 밝혀지는 후반부 출퇴근 장면은 먹먹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화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


회사라기보다 동아리방 같았던 초반부 장면에 주로 쓰인 핸드 헬드 촬영과 초점이 어긋난 숏들은, <소풍가는 고양이>가 매출 신기록을 달성하는 후반부로 갈수록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고정해 놓고 찍은 안정적인 숏들로 대체됐다. 화면이 안정감을 찾을수록 인물들의 정서적 현실은 더 팍팍해지고, 초반부 회사의 공기를 채우던 빈틈들이 사라지면서 화면은 깔끔해진 만큼 더 비정하게 보였다.



by 타자 치는 스누피



(해피투데이 2019년 5월호 '부엉이 극장' 원고입니다)



#길모퉁이가게 #소풍가는고양이 #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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