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치는 스누피의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열혈 취재기
(<PAPER> 2019년 겨울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취재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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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었다. 까닭 없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무작정 영화를 보러 가자고 친구들을 꼬드겼다. 차를 몰아 황혼에서 새벽까지 고속도로를 달렸다. 부산의 새벽 공기는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바다 짠내를 맡으며 반주를 곁들인 한 끼로 허기를 달랬고, 대중탕 통유리 창으로 일출을 보며 목욕을 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 돼지국밥으로 해장을 한 후 자갈치 시장에 가서 회를 먹었다. 개막식이 열린 수영만 야외상영관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얇은 옷깃을 여며 쥐고 덜덜 떨면서 마음속으로 주연배우의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를 수십 번 따라 외쳤다. 그렇게 나는 첫눈에, 부산국제영화제와 사랑에 빠졌다. 제4회 개막작은 <박하사탕>이었고, 설렘을 가득 안고 8시간을 달려 내려가 개막작 한 편만 본 후 진한 아쉬움을 부여 쥔 채 다시 서울로 돌아왔던 기억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한 장만 인화돼 남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내 짧은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1999년 10월 14일의 일이었다.
2019년 가을,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았다. 'PAPER 객원기자'라는 명패가 황송해서 영~ 입에 붙지 않았다. 밥벌이에 치여 엄두도 못 내다가 오랜만에 영화제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구나 안다. 여행은 막상 할 때보다 계획을 짤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2019년 상영 시간표를 출력해서 나만의 시간표를 만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동 시간대에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뭘 볼까?' 장고를 거듭했지만 부질없는 희망 고문이었다. 인터넷 예매 전쟁은 살벌했다. 예매 시작 1분 만에 1순위부터 8순위까지 찜해두었던 영화표가 깡그리 매진되었다. 좌석을 고르고 결제 카드 번호를 입력하는 사이 내가 열망하던 영화 티켓들이 몽땅 사라져버렸다. 계획은 어그러지고 나는 빈손이었지만, 이삭줍기하듯 남은 영화표를 긁어모았다. PAPER 편집부에 전설처럼 떠도는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영화제의 진정한 재미는 불현듯 맞닥뜨리는 돌발 상황에 있는 거야." 밑져야 본전이니 편집장님의 그 말을 믿어 보는 수밖에. 전주영화제에서 <그을린 사랑>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예매해둔 저녁 표를 찢고 술을 마시며 영화를 곱씹었다는 일화나, 보고 싶었던 영화표를 못 구하고 아무 극장에나 들어가 봤다는 인도네시아 영화 <아주 특별한 여행>의 잔상이 오래도록 낙인처럼 찍혀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다. 기호의 차이와 호불호가 있을 뿐. 모든 영화에는 명분과 목적과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나름의 형식이 있는 법이니까. 10월 3일 KTX를 타고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태풍 '미탁'의 진로에 영화제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짙은 먹구름을 비집고 해가 나더니 부산의 하늘이 파랗게 생글거린다. 거짓말처럼 태풍이 지나갔다. 어디선가 료타와 요시코 콤비가 나타날 것만 같다. 여기는 영화의 도시 부산 아닌가. 갑자기 키키 키린 할머니가 못내 그리워졌다. 그나저나, 금강산도 식후경. 부산에 왔으니 일단 밀면 한 그릇부터 먹고 시작!
부산 대저동엔 괴담(?)이 하나 있다.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른다는 대저동 대장금 구귀옥 여사님의 식고문 패키지 풀코스. PAPER 기사로 숱하게 보고 귀동냥으로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마법의 만찬을 실물로 영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문은 한 치도 허투름이 없었다. 세 치 혀는 손맛의 황홀에 녹았고, 허기진 마음과 헛헛한 속은 어머님의 정성과 환대로 가득 채워졌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나물 반찬, 정성으로 튀겼을 고추와 감자 튀각, 처음 맛보는 부산식 족발 냉채의 풍미, 그리고 아···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호박죽의 그 맛! 맛도 양도 차고 넘쳤다. 그런데, "아이고 야, 암 것도 몬~ 했다. 요번 호박죽은 영~ 아이다. 먹을 기 벨로 없는데, 우야노··· 그래도 마이 묵으라··· " 편집장님께 숱하게 전해 들었던 어머님의 그 겸손의 추임새는 도돌이표 노래가 되어 저녁 식사 시간 내내 부러질 것 같은 상다리 주변을 맴돌았다. 듣는 귀마저 배가 불렀다. 꿀이 들었다는 대선 소주와 박주호 기자가 담가 온 앵두주를 곁들인 대저동 만찬과 함께 부산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밥상을 물린 후, 대저동 대장금 구귀옥 마마님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오셨다. '미싱'으로 손수 박음질해 만든 가방과 잠옷 바지였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재봉질 해 만들어 주던 딱 그 옷이었다. 골라 주신 땡땡이 파자마를 얻어 입은 나는 함빡 웃으면서 (그만 엄마 생각이 나서 속으로 울컥) 울었다. '부산 엄마'가 만들어 주신 '파자마'를 입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잠깐 엄마를 본 것도 같다. 따뜻한 밥 한 끼에 엄마의 마음을 담아 주신 대저동 대장금 구귀옥 여사님,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지도 없이 떠나는 여행과 같다. 소풍날 보물찾기 같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우연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열흘 동안 부산에서 서른두 편의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 아무 걱정 없이, 하루 종일 영화에 빠져 지낸 열흘이었다. 행복했다. 몹시 행복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간절함으로 미친 듯 영화를 보았다. 한 편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밥을 굶었다. 프레스 전용 매표소의 경쟁도 일반 매표소 못지않게 치열해서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도 못 먹고 해운대 그랜드호텔 로비로 달려나가는 아침이 반복됐다. 그래도 허탕을 친 날이 더 많았다. 아침마다 예매 전쟁을 치르고 네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가 저물었다. 때때로 어쩔 수 없이 고른 영화가 반짝반짝 빛나서 기뻤다. 부산에 묵은 열흘 동안 나는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고 조금 더 묵직해졌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둘째 날 늦은 밤 9시. 영화의 전당 티켓 부스 앞에 이상한 줄이 늘어선 것을 보았다. 설마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다음 날 표를 구하기 위해(당일 오전 9시 판매 시작) 선 줄이었다. 야외 매표소도 마찬가지였다. 시네필들의 열정이 쌀쌀한 날씨마저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미쳤다. PAPER 식구 중 젊은 피 둘(신제헌 디자이너, 박주호 기자)은 미드나잇 패션(오후 11시 59분부터 3편 연속 상영하는 심야영화 섹션)을 보러 떠났다. 그들은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아침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쪼개고 고양이 세수만 한 채 숙소를 나섰다. 오전 8시의 매표소에는 늘 먼저 줄을 서 있는 분들이 있었다. 닮은 얼굴이 궁금해서 여쭈었더니 엄마와 딸이었다. 영화 친구로 함께 늙어가는 모녀는 1회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부산영화제를 찾는다고 했다. 영화제 곳곳에서 그런 분들을 만났다. 존경을 담아 대단하시다고 말씀드리면 그저 영화가 좋아서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산영화제 기간마다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찾는다는 초로의 신사를 만나기도 했다. 티켓 오픈을 기다리는 동안 삼삼오오 모여 전날 본 영화와 앞으로 볼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도미토리 숙소에서 만난 룸메이트는 영화제 참가를 위해 해마다 휴가를 내고 부산에 내려온다고 했다. 숙소에 돌아온 밤마다 우리는 우리만의 영화 이야기를 꽃피웠다.
영화제의 열기는 세계 최고였지만 미숙한 운영 몇 가지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센텀시티 cgv 극장 첫 회 상영 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개방하지 않아서 정시 입장을 위해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극장 스케줄 때문에 GV는 언제나 급박하게 진행됐고, 통역 자원봉사자의 미숙한 통역 때문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관객들의 볼멘 원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스타리움관(2.35:1)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면비(1.33:1)의 영화 <비탈리나 바렐라>가 좌우에 거대한 여백을 둔 채 상영돼서 관객들이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세계적 수준으로 규모를 키운 부산국제영화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영화제 전반의 상태를 낱낱이 살펴봐야 하고 뼈를 깎는 성찰도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에 돌아와 밤마다 뜨거웠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시네마 동키> 덕분에 이란에도 코미디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심을 다해 한국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사에드 아마드로우 감독의 GV는 감동적이었다. 친절한 밀란 압디칼리코프 감독의 영화 <달려라 소년>을 보고 키르기스스탄에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표소가 있던 호텔 로비에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만나기도 했다. <마르게와 엄마>를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았다. 야외상영관에 나타난 티모시 살라메는 부산을 뒤집어 놓았다. 세대를 아우르는 물결이 일렁이고, 젊은 관객과 나이 든 관객이 같은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영화제의 과거와 현재가 뜨겁게 몸을 섞는 동안 스물네 번째 부산영화제의 밤이 저물어갔다. 송정 해수욕장 포장마차에 앉아 보았던 부산 밤바다의 미장센과 <비프힐> 3층 프레스 센터의 어둠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은하보습반>의 야외 상영 장면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터였다. 무엇보다 영화제의 진짜 주인공은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들이고, 당신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는 한 부산은 오래도록 늙지 않을 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아! 그리고 영화제 기간 동안 내 영화 친구가 돼주었던 정유희 편집장님께 한 스푼 더 진한 감사를 전한다.
by 타자 치는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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