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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Feb 26. 2019

소음이 신호로 바뀌는 기적

우간다에는 소음이 없다

네이트 실버는 자신의 저서 <신호와 소음>을 통해 하나의 현상에서 유의미한 정보(신호)와 무의미한 정보(소음)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이즈 정리나 확률 통계 따위는 솔직히 내 선에서 이해하기 버거웠다. 내 수준은 '유의미한 정보를 신호라는 이름으로, 무의미한 정보를 소음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는 게 문학적으로 썩 들어맞는 비유다' 정도.

우간다에 오기 전까진 나는 소리에 그다지 민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은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서 움직였고 늘 하던 대로 신호와 소음을 구분해 그에 맞는 대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내게 들어오는 정보가 퍽 새로운 탓에 정보를 수용하는 시각과 청각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렇듯 무수한 소음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선별하는 작업에 이전보다 몰두하다 보니, 단순 소음이 신호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한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음
이곳 가전제품은 유달리 큰 존재감을 발휘하며 내 귀로 꽂힌다. 1인 가구를 위한 아담한 냉장고인데도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집 현관문을 열기 전에도 냉장고가 잘 돌아가는지 강제로 확인 가능할 정도다.

지난 주말, 밤사이 폭우로 인해 30시간 가까이 정전이 지속됐다. 나는 본의 아니게 템플스테이를 경험했다. 집주인 어니스트 씨는 "날씨가 많이 좋지 않을 때 아예 두꺼비집을 내려놓아야 가전제품에 피해가 없다"라며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내게 당부했다. 폭우가 계속돼 두꺼비집을 내린 채 밤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꺼비집을 올리고 방 안 불을 켜봤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보조배터리도 없이 내 핸드폰이 36%가 되자, 끝내 집을 나와 동료 단원의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은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 나는 주섬주섬 가져온 각종 충전기를 모두 꽂고 전력 기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진자 지역 전반에 내린 폭우는 내게 충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정전과 충전을 반복하면서 더는 버티지 못했고 끝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작은 친구가 우리집 전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두꺼비집을 올려봤다(당시 정전 동안 30분에 한 번씩 올려 봤다). 두꺼비집의 경쾌한 '딱' 소리가 들리고, 이내 묵직한 소음이 내 귀를 때렸다. 방 불을 켜보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작고 아담한 친구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것은 냉장고 소음이 아니었다. 집안이 다시 생기를 찾았다는 신호였다.


#아이들이 유발하는 층간소음
집주인이 2층에, 나는 1층에 거주하는 형태의 특성상 나와 그의 가족들은 어느 정도 사생활을 공유하고 살아간다. 그의 가족 구성원은 3명의 어린아이를 포함하고 있는데, 백인도 아닌 아시아인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이유로(아시아인을 마주치기 매우 어렵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귀여운 아이들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놀아달라고 보챈다. 내 공간의 현관문이라도 열리면 귀신 같이 집으로 들어와 생글생글 웃는다. 바깥에서 우리 집을 빤히 보다가 거실 창문에 매달려 'Mr. Kim~'을 연신 외친다. 마당이나 집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귀에 꽂히기 일쑤다. 집에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방해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밤 폭우, 전기 없이 혼자 아프리카라는 곳에서 홀로 살고 있음으로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 혼자 멍하니 있을 때 아이들이 번개 소리에 놀라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긴장감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귀여운 웃음소리에 피식 웃었다. 아이들의 소리는 층간소음 아니었다. 내가 안전한 곳에 지내고 있음 의미하는 신호였다.

Patience(4세). 특징: 나만 보면 내 손잡기. 장기: 현관문 두드리기.
Patrick(3세) 특징: 인사 잘함.

이번 주말엔 냉장고도 한 번 닦아주고, 아이들과 더 오래 놀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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