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편견 타파 프로젝트2
미용실이 어려운 이유는 미용실에만 오면 언어 기능의 대부분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무슨 컷으로 잘라주세요'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하니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빙빙 돌려서 말하기 시작하는데 그럴수록 설명은 산으로 간다. 하지만 헤어 잡지의 레퍼런스를 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몹시 낯 뜨겁다. 그렇다고 '박서준처럼 잘라주세요'라고 말하자니 뭔가 연예인 따라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자존심 상한다(사실 다 따라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8년간 우리 가족의 머리를 담당하던 현준 선생님에게 아프리카로 해외봉사를 떠난다고 말했을 때 그는 고심 끝에 스스로 헤어컷이 가능한 스타일을 만들어줬다. 아프리카에서 머리를 자른다는 것 자체가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옆머리와 뒷머리를 미리 잘라준 라인에 맞춰 이발기(바리깡)으로 밀고 윗머리는 다듬거나 기르라는 전략이었다.
어느덧 우간다 생활이 2달을 넘어서자 머리가 눈을 찌르기에 이르렀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가 꽤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아프리칸들은 북방계 민족의 검은 직모에 익숙하지 않아 그들이 자르면 바가지 머리가 된다.
2. 이발기나 면도기의 청결 상태가 불량해 자칫 질병에 전염될 수 있다.
3. 지금 머리 괜찮다
이 세 가지 의견을 모두 물리치고 우간다 진자에서 시설이 가장 깔끔해 보이는 미용실로 향했다. 아프리카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겠다는 이가 머리를 맡기지 못하는 내면의 이중성이 싫기도 했다. 왁싱과 마사지까지 같이 있는 미용실이었고 시설도 쾌적해 보였다. 무엇보다 미용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푹신한 의자와 사방의 거울이 주는 안정감에 나도 모르게 홀렸던 것 같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머리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을 시작했다.
옆·뒷머리는 밀고 윗머리는 조금만 다듬어주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순조롭게 바리깡으로 옆머리와 뒷머리를 밀고 가위를 들어 트리밍을 시작할 때 '서걱'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머리가 조금 잘리는 느낌과, 많은 양의 머리가 잘리는 느낌은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그제야 내 표현의 문제를 알아챘다. 두꺼운 흰 가운 안에서 식은땀이 터졌다. 서늘한 칼날의 소리가 귓등을 스친다.
앞머리를 다듬을 때쯤 어느 정도 해탈의 상태에 이르렀다. 기존에 우리가 아는 커트 방식(가위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붙잡고 다듬는)이 아니라 색종이 접기에서나 볼 수 있을 반듯하고 정갈한 가위질이 시작됐다. 그렇게 내 머리는 최종적으로 레고 인형을 연상시키는 바가지 머리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샴푸 후 머리를 말리는 과정이었다. 머리를 말릴 때 드라이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빗으로 머리를 하나하나 펴서 물기를 뺐다. 흑인들처럼 곱슬하고 억센 머리라면 효율적이겠지만, 우리네 북방계 민족의 검은 머리칼에는 당최 효과적일 순 없었다. 얼굴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견디고 난 후 수건을 받아 내가 직접 머리를 털었다.
당황스러운 가슴을 진정시키고 계산대에 갔다. 종업원은 싱긋 웃으며 10000실링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는 3000원 정도. 불현듯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교련 교과목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가르쳐줬던, 18mm 반삭과 15mm 반삭이라는 두 가지 옵션으로 학생의 자율성을 확보해줬던, 대전의 모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학교 앞 미용실에서 4000원에 머리를 자르곤 했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저렴한 미용실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미용실의 기록을 우간다가 갈아치웠다.
아무리 우간다가 사람 사는 곳이라 해도 머리 스타일까지 이가자 헤어비스에서 자른 것 마냥 멋들어지게 나올 순 없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