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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Apr 29. 2019

우간다 경찰이 나를 연행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풀려나고 싶었다


You’ve just got arrested.

영화나 드라마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이 대사. 우리는 대체적으로 이 말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심지어 일말의 긴장감도 느끼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리는 이 말은 단순히 극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AK 소총을 든 경찰이 내게 심각한 얼굴로 다가와 이 말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졸지에 현행범이 된 건 그러니까 데드리프트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쯤 오른쪽 발목의 인대가 파열되면서 골절이 같이 발생하는 건열 골절을 진단받았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운동을 못했다. 임지에 파견되고 조금씩 회복하며 운동 강도를 꾸준히 늘렸고 마침내 심폐지구력과 스트렝스를 건열 골절 이전 몸 상태 이상으로 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흘 전 데드리프트 마지막 세트 도중, 봉을 끝까지 뽑기 위해 허리를 지나치게 꺾었다. 허리의 과신전으로 그대로 풀썩 봉을 놓고 주저앉고 말았다. 허리가 원래부터 좋진 않은 탓에 요추 염좌는 2, 3년에 한 번씩 객처럼 찾아오곤 하지만, 그를 맞이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사진 좌상단에 위치한 랙에서 풀썩 쓰러지며 지금까지 허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앉아 있기도 어려운 허리로(글을 쓰는 지금도 서 있다)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 그저 바른 자세로 열심히 걸으며 빨리 이 객이 2주 안에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요추 염좌는 대개 2주 이내로 낫는다). 손목에 찬 미밴드를 보니 걸음 수도 너무 적었고, 요 며칠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더해지니, 산책을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길을 떠났다. Source of the river Nile Bridge를 돌아 다시 집으로 오는 코스를 목표로 말이다.


또 내가 졸지에 현행범이 된 건 그러니까 산책 코스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타운 끄트머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로 항상 러닝을 하는데, 그날따라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었다. 아마 카메라까지 들었으니 그런 욕구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Source of the river Nile Bridge에 걸어서 가는 건 처음이었다. 우간다 진자로 오는 외부인이라면 이 다리를 절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게, 진자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우간다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 중 하나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안대교 혹은 서해대교 정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다리 길이는 잠실대교의 절반에 불과하다. 내게 이 다리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던 내 이전 현지어 강사에게 반포대교의 저녁 8시 분수쇼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이내 참았던 적이 있었다.

사진은 예쁜데 왜 나일강이 아니라 두물머리 같아 보이는가(2019.02)


또 내가 졸지에 현행범이 된 건 그러니까 사진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최근 들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러니 이왕 10km 정도 걷는 김에 출사까지 한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책과 출사가 목적이었던 탓에 지갑도 챙기지 않았다. 내 몸엔 집 열쇠, 선글라스, 카메라, 스마트폰만 지닌 채 집을 나와 나풀나풀 걸어 보았다. 카메라에 담으려니, 오늘따라 우리 동네가 유달리 예뻐 보였다. 그렇게 Source of the river Nile Bridge에 당도했다. 우간다에서 보기 어려운 시멘트 차도와 정갈하게 그려진 흰색 차선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얼핏 캘리포니아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최소 라라랜드(2019.04.28)
흔한 집 주변 풍경. 목줄은 반려견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우간다 사람들에게 오늘도 감사를 전하며(2019.04.28)



하지만 여긴 캘리포니아가 아니었다. 그게 지금 여기 내 앞에 ak 소총을 든 남자에게 카메라를 뺏긴 이유다. 그와 조우하게 된 건 뜬금없게도 '전기 위험' 때문이었다. 다리의 일정 구간마다 세워진 전원기(?)에 한글이 떡하니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대놓고 카메라를 들어 구도를 세심히 맞춰 찍었다. 작품 활동을 마치니 소총을 든 남자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환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분명 환하게 웃으며 루소가로 인사를 했는데 대뜸 나를 현행범으로 못 박았다.

이 사진을 찍던 도중 ak 친구와 조우했다. 나일강 다리 안전 관리를 책임지시는 임승빈 님과 김희윤 님. 언제나 파이팅입니다(2019.04.28)




“저기서 뭐 했죠? 사진 찍었죠? 사진 좀 봅시다.”
“아 사진이요? 네. 보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ak 친구는 한층 더 심각한 얼굴을 하며 확신에 찬 어조로 내게 쏘아붙였다. “바로 이 사진요. 당신 방금 현행범으로 체포된 겁니다.” 전원기 사진은 아니었고, 그 이전에 찍은 다리 전경 사진을 가리키며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미란다 원칙을 설명해주진 않았다. 아마 미란다 원칙을 주절주절 설명했다면, 더 심각하게 긴장했을 것 같다.

그제야 함부로 구조물이나 건물을 찍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코이카 사무소의 당부가 생각났다. 그래도 뭐 별 수 없다. 나는 있는 힘껏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하게 설명에 돌입했다. “아 정말요? 이거 정말 유감이네요. 이 다리에서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공고문이나 안내가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어요. 혹시 괜찮다면 제가 이 사진을 지우면 해결될까요?”

하지만 우리 ak 친구는 꽤나 강경했다. “안됩니다. 이 사진이 증거인데 증거를 지우면 안 되죠. 당신 일단 우리 보스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보스랑 이야기하고 카메라는 압수될 겁니다.”

이전에 내 동료 단원들이 경찰서 사진을 찍다가 바로 유치장에 갇혔던 경험을 유희성 글감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링크 참조​), 내가 그 꼴을 당하게 생겼으니 화가 조금 났다. 게다가 카메라 압수는 좀 심했다. 이곳에서 잃어버리면 화가 많이 날 것 같은 물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 유감스럽지만 카메라를 압수하는 건 좀 가혹한 처사 같다고 느껴지네요. 일단 보스랑 이야기하게 보스 있는 쪽으로 갑시다. 어디로 가면 되죠?”

이렇게 정다운 대화가 오고 가니 한 명이 더 왔다. 비무장 상태의 남성이었지만 그의 동료였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거들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예의를 잃지 않으며 온화하게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나의 신분을 공개하는 게 전부였다. 루소가를 쓰면서 이들에게 친분을 한껏 드러내고 싶었는데, 경찰에 연행되기 직전 무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무슨 표현을 쓰는지 가르치는 언어 교육 프로그램이나 선생님은, 내가 알기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분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이해했어요. 저는 이곳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한국 정부에서 파견된 봉사단원이랍니다^^.”

비무장 남성이 내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은커녕 명함도 안 들고 왔는데 좀 아득해지고 초조해졌다. 스마트폰에 찍어둔 관용 여권을 대신 보여줬다. ‘Official passport’임을 강조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보면 아시겠지만 이건 관용 여권이고, 저는 여기서 우간다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답니다^^.”



“What can you do to be forgiven?”
ak 친구가 걸어가다가 나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까지 3초 정도 걸렸다. 말이 안 들렸던 건지,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올 말이라곤 예상하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좋아요. 어디 한 번 이야기해봐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30만 실링 벌금을 내면 풀려날 수도 있어요.”
좋게 번역해서 벌금이었지, 그냥 30만 실링(9만원 정도)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내 진심이 통했던 걸까? 나는 정말 주고 싶었는데, 수중에 돈이 정말이지 한 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달 생활비를 아예 다 써서 내일 은행에 환전하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집으로 그들을 초청해도 돈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상황이었다(아직 환전을 안 했으니 지금도 유효하다).

“(양쪽 바지 주머니를 뒤집으며)이를 어쩌죠. 저도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은데, 정말 한 푼도 없어요(‘literally zero money’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보스한테 가죠.” 왜 자꾸 보스한테 가자고 내가 졸랐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빨리 윗사람이랑 이야기하고 마무리짓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발자국 못 걸어가 그들은 이내 나를 포기했다. 비무장 남성이 외국인이고 잘 몰랐으니 이번은 넘어가겠다며 내게 말했다. Ak 친구는 다소 불만이 많아 보였다. 이곳에서 과일, 채소, 기타, 월세 등 시장에 나온 모든 것을 다 깎아 봤다. 하지만 이젠 하다 하다 'fine haggling'이라는 색다른 경험까지 더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충분히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비무장 남성과 함께 나일강을 건너 낡은 다리로 걸어갔다. 덕분에 그와 통성명을 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비무장 남성은 데이비드였다. 그는 내가 다른 길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잘 알려줬다. 그의 갑작스러운 친절함에는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꾸준히 심각한 것보단 갑작스럽더라도 친절하게 바뀌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그제야 루소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제 1과에서 배우는 자기소개 상황이니 말이다. 데이비드는 ‘우간다 오니까 어떠냐’는 질문을 건넸다. 방금 현행범이 될 뻔한 사람에게 건네기 적절한 질문인지는 의아스러웠으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간다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아!”

그래도 다리에서 한 장 건졌다. 뜻밖의 카파이즘. 사진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건 정의구현하는 언론인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인 줄만 알았다(2019.04.28)



일련의 사건으로 예상보다 더 걸을 수 있었고, 덕분에 요추 염좌 회복엔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비록 소총에는 실탄이 들어 있고, 벌금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을지언정, 방금 현행범 될 뻔한 외국인의 근황과 기분을 거리낌 없이 물어보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곳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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