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그 강의는 안 들었음 좋겠어요.
코로나로 이 시국이 펼쳐지기 전, 제 올해 목표는 소설 쓰기 강의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웬만한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그 잘 쓰는 분들도 소설 쓰는 걸 배운 적 있다고 하시던걸요. 스타트업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유명한 장류진 작가, 지난 솜사탕에서 덕심 가득 담아 소개한 박상영 작가, 이 이상의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황정은 작가까지. 심지어 김애란 작가는 한예종 출신이죠.
이쯤 되면 배워야 산다! 대신 배워야 쓴다!를 외쳐도 되지 않겠습니까. 멋진 글을 쓰는 작가에게 배우는 작법론이나 함께 글 쓰는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합평은 왠지 모락모락 낭만을 피워올리고!
이렇듯 돈을 쓰면 글을 쓸 엄두가 좀 더 쉽게 나지 않을까 생각하는 저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은 강의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렇게 쓰면 된다'고 단언하는 글쓰기 수업. 요즘 온라인으로 글쓰기 강의 몇 편을 제공하고 두세 건 정도 글 첨삭을 해주는 유료 콘텐츠들이 있더라고요.
저도 글쓰기 강의를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 글쓰기를 배우는 건 좋은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고 싶은 글이 에세이라면 '이렇게 쓰면 잘 쓸 수 있다' 식의 강의는 피하는 게 좋지 않나 해요. 몇 가지 글쓰기 강의 커리큘럼을 봤는데 자기가 고친 글 샘플을 몇 나열하고는 '강의를 들으면 당신도 이렇게 쓸 수 있어요!' 하던데요. 저는 고친 글들이 딱히 더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강의를 진행하는 사람의 스타일대로 고친 건데, 모든 사람의 글이 그런 식으로 비슷해질 거면 애초에 AI한테 맡겨버리고 말죠 뭘. 잘 쓰든 못 쓰든 자기 스타일을 찾고 그 스타일을 살려 잘 쓰도록 노력하는 게 훨씬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내가 쓰는 글은 내 지문 같달까요. 지문이야 얼핏 보기에 동글동글 나무테 같고 모든 사람이 비슷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죄 다르잖아요. 같은 언어로 쓰인 비슷한 주제의 글이라도 백이면 백 다른 것이 결국은 지문이 다른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글에 담긴 개성의 근원은 글을 쓰는 사람 그 자체니까요.
어릴 땐 무조건 잘 쓴 글, 좋은 글만 읽겠다며 날을 세우고 찾아다녔는데 이제 보니 마냥 잘 쓴 글이 좋은 글은 아니더라고요. 특히 에세이가요. 제가 에세이를 통해 보고 싶은 건 잘 쓴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 생각이 내 기준에서 감탄이 날 만한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고요. 문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좋은 문장으로 가득 찬 내용 없는 글보다는 투박한 문장 틀린 표현에 담긴 멋진 사람 이야기가 훨씬, 정말 훨씬 좋아요!
*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 35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