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숨은 재미 찾기 - 절판도서 중고로 사 모으기
우리 집 거실 한켠은 책으로 빼곡하다. 몇 달 전 책장을 들일 땐 '이거면 됐다' 했는데 웬걸. 세로로 나란히 꽂아둔 책 위에 벌써부터 가로로 누운 놈들이 생겼다. 읽지 않은 책을 쌓아둘 때면 마음 한구석이 켕기지만, 책이야 뭐. 꺼내 읽어도 좋지만 꽂힌 그대로도 제값을 한다. 멋지잖아. 인테리어라고 치자. 이쯤 되면 취미가 책 읽기인지 책 모으기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책장은 마냥 관상용이 아니다. 재미없는 건 갖다 파는 와중에 둥지를 튼 책들만 이렇게 한가득. 담고 있는 사연도 저마다 달라서 찬찬히 둘러보면 나 혼자 뿌듯하다. 개중에도 특히 마음이 웅장해지는 몇 권이 있는데, 책장 사이사이에 티 나지 않게 꽂혀 있지만 나는 다 기억한다. 더는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절판도서들.
함께한 지 오래된 책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표지와 판매부수는 그 속에 뭐가 들었나 알려주지 못한다. 십만 부도 넘게 팔려 리커버만 몇 종이 나오는 책과 10년 전 출간되어 1쇄가 아직도 팔리는 책. 둘 중 무엇이 좋은지는 읽어보기 전까지 말할 수 없다. 좋은 책이 많이 팔려 오래 서점에 남으면 좋겠지만 출판사들도 땅 파서 장사하진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 뒤늦게 알게 된 좋은 책, 좋아 보이는 책 중에는 서점에서 더는 살 수 없는 것도 제법 있다.
절판도서는 중고라도 부르는 게 값이다. 정가의 네다섯 배를 줘도 부족할 때가 있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개중 유명했나, 원서 기준으로 1988년 출간된 어린이용 책인데 일러스트도 내용도 좋다며 여기저기 소문이 났었다. 비싼 값을 주고 산 사람들도 제법 있었을 거다.
우리 집 책장에 꽂힌 건 개정판인데, 돈이 없어 못 구해 잊고 살다가 온라인 서점 광고 보고 잽싸게 구매했다. 스마트폰이랑 드론 이야기까지 더해졌으니 존버는 승리한다는 게 이런 걸까. 정작 사놓고 몇 장 보지도 않은 건 웃긴다.
언제고 읽을 수 있지만 굳이 초판을 갖고 싶은 책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제일 좋아하는 작품. 내 경우에는 황정은 작가 <디디의 우산>이다. 2017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처음 만나 읽었는데 그날 잠을 못 잤다. 그만큼 압도적인 소설이 세상에 몇 편이나 될까. 이후 다른 연작과 함께 출간된 <디디의 우산> 단행본도 나오자마자 샀다. 문제는 동시 발매된 동네서점 에디션의 존재였는데, 같은 책을 표지가 다르다고 또 사야 하나? 싶어 구하지 않았다만 뒤늦게 눈에 밟히는 거다. 이렇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동네서점 버전도 같이 샀으면 좀 좋아. 심지어 그건 표지도 예쁘다고.
진작 절판된 그 책은 1년 반 알라딘에 상주해 가며 중고로 구했다. 중고서적 등록 알림을 설정해 두었지만 웬일인지 알림이 제대로 온 적이 없어 생각날 때마다 검색해 보는 식이었다. 어쩐지 운수 좋은 날 결국은 내 손에 그 책이 들어왔는데, 동네서점을 이용하자는 그 에디션의 존재 이유에 영 벗어나게 되어 조금 민망했다. 그치만 이왕 중고로 나온 책인데 우리 집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게 구한 <디디의 우산>은 잘 보이는 곳에 일반판과 나란히 꽂혀 있다.
<디디의 우산> 동네서점 에디션을 구하고 나니 세상에 못 사는 책은 없지 않나 자신감이 붙었다. 알라딘 중고를 종종 검색해 보는 이유다. 판매자들이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책도 알라딘 '이 광활한 우주점'에 올라오면 정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 안 살 이유가 없지. 그렇게 구한 절판도서들이 몇 권 있다. 절판된 책들을 펼쳐보는 마음은 여러모로 각별하다. 드디어 만났구나, 첫 장을 읽었을 때 그 벅찬 마음은 책 읽기를 질리지 않게 한다.
어제는 한참을 찾았던 <이백오 상담소>가 도착했다. 정말 좋아하는 소복이 작가의 만화책이다. 얼마 전 출간된 <구백구 상담소>의 전작인데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어 속상하던 차에 드디어! 출근길에 펼쳐 드니 여기 9호선 타고 회사 가는 사람 중 제일 행복한 사람이 나인가 싶더라.
이제 사려던 책은 다 샀다. 다 가진 기분 뒤에 약간 섭섭한 마음도 있다. 당분간 호시탐탐 중고책을 살펴볼 일은 없겠구나. 물론 당분간만이다. 언제 또 내 마음을 두드리는 절판도서를 만날지 모르는 일. 세상에 더 없는 책은 읽는 것도 즐겁지만 찾아내는 과정도 각별하다. 그때를 위해 준비해 두자. 책장에 빈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