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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리빙포인트방

#4. 숨은 재미 찾기 - 뜬금없는 생각 하기

by 여름

우리 집 주전자 바닥의 까만 얼룩이 신경쓰인다. 언제부터 이런 게 묻어 있었지? 스테인리스라 녹이 슬진 않았을 텐데. 인터넷에 ‘스테인리스 세척’을 찾아보았다.


새 스테인리스 제품은 세제만 써서 씻으면 안 된단다. 연마제가 묻어 있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스테인리스에 광택을 낼 때 탄화규소가 연마제로 쓰이는데, 이게 발암 추정 물질이라고. 관련 규정이 없어 새 제품에 탄화규소가 그대로 묻은 채 판매된다는 오싹한 이야기. 물과 세제로 닦이지 않기에 식용유로 닦아낸 후 베이킹소다로 다시 세척해야 하는데, 식용유로 닦아낼 때 까만 얼룩이 묻어나올 거란다. 그럼 혹시 그 얼룩도?


이런 정보는 다들 대체 어디서 얻는 걸까? 세상에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나름 세상에 뛰어든 지 12년 된 자취생인데, 내가 잘 아는 건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뿐이다. 그거야 뭐 간단하다. 물에 스프를 먼저 넣고 물이 끓으면 면을 넣어 3분을 기다리면 된다. 라면용 냉동꽃게를 넣으면 국물 맛이 더 살아나는데 이땐 게와 스프를 함께 넣어 10분 정도 먼저 끓이고 면을 넣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라면을 맛있게 먹으면 뭐 하나, 스테인리스 냄비를 제대로 닦지 않았으니 발암물질을 함께 먹었을 수도 있는데!


조용히 생활 상식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이 있으면 좋겠다. 잘 사는 데 서로의 취미나 정치 성향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만 조용히 정리해 올리는 거다. 이름은 아마도 ‘고독한 리빙포인트방’. 노트북을 충전할 때 손을 대면 찌릿한 건 접지 문제이니 충전기를 바꿔보라거나, 비타민은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리니 점심 먹고 챙기라거나.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면 조용히 하트나 따봉 수가 올라갈 것이다. 반응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팩트체크 후 노션 문서에 아카이브해 오픈채팅방의 휘발성을 보완하자.


아카이브 문서가 여기저기 공유되면 다들 조금씩 더 잘살게 되지 않을까? 발암물질을 덜 먹고, 맛있는 라면을 더 먹고, 집단 지성의 좋은 사례로 널리 알려지고, 느슨한 연대에 대한 예시로 바이럴되고, 스브스뉴스 인터뷰 요청이 오고, Why? 시리즈에 출연하고.


그런 일장춘몽을 꾸어 보았다. 가서 일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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