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실업급여 수급자가 되다
“안녕하세요. 실업급여 신청하러 왔는데요.”
“아직 전 직장에서 정보가 넘어오기 전이네요. 퇴사 사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실업급여 받는 것도, 고용센터에 방문하는 것도 난생처음이다. 여기서 뭘 신청해야 나라에서 돈을 준다던데~ 하며 쫄래쫄래 왔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말 잘해야 한다. 괜한 자존심 세워서 “회사에서 제가 하는 일이 필요 없어지게 되어서요” 했다가는 의심을 살 거다. 두 번 묻지 않게 하자. 0.1초간의 두뇌 풀 가동 끝에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일 못한다고 잘렸는디….”
퇴사 이유가 한 방에 납득되었던지 서류 처리는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2주 후 다시 와서 교육을 들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엥,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교육 한다던데? 사회적 거리두기 끝났다고 다시 부르는 건가? 다다음주는 일정이 안 되는데? 궁금한 게 많아 창구를 다시 찾으니 교육 날짜 변경은 다른 창구에서 해야 한다고 손을 휘적휘적했다. 내가 말을 너무 멍청하게 해서 한심해 보였나. 그게 뭐라고 좀 알려주지 싶다가 돈 주는 곳에 과한 친절을 바라지 말자고 마음을 털었다.
‘일 못한다고 잘렸는디’를 못 들어서일까. 다른 창구에 계신 분은 세상 친절했다. 온라인 교육이 없어진 건 아닌데, 나는 실업급여를 210일 이상 받는 장기수급자라 방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업급여가 210일이나 나온다고? 하루에 6만 6천 원이나? 그동안 7년 넘게 쉬지 않고 일한 보람이 있었다. 꼬박꼬박 세금 낸 게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신이 나서 돌아가는 길에 수급자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적극적 구직활동을 계속해야 실업급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럼그럼, 응당 그래야지. 돈 받는 게 쉽지 않지. 하지만 이 말 한 마디에 좋았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적극적 구직활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지급 사례]
: 경력, 연령, 기능 및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수용 불가능한 근로조건만 고집하는 경우 등
나는 어떤가. 7년 경력 콘텐츠 마케터, 3X살, 쓸만한 콘텐츠 제작 기능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요즘의 노동시장 상황에 맞는 기능은 아닐 수도 있다.
회사에서 내 자리가 없어진 건 내가 당장 돈을 벌어오는 마케터가 아니어서다. 눈길을 끄는 카피를 쓰고 온라인 광고를 돌리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일회성보다 진정성, 만들어두면 오랫동안 브랜딩에 도움될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 전문이다. 회사 홈페이지와 블로그, 채용공고까지 영역 자체가 무궁무진하니 일거리는 항상 있었다. 칭찬도 월급도 아쉽지 않게 받았다. 문제는 불경기를 맞아 빠르게 축소되는 스타트업 업계의 재정 상황이었다. 브랜딩에 힘쓰지 않아도 회사는 돌아간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게 나의 자리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자리.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적극적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내가 갈 만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는 것인데, 나의 직무 대비 근로조건은 지금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것일까. 실업급여를 받는 210일 동안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어쩌나. 기죽지 않는 백수가 되기로 했는데, 어깨가 자꾸 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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