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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07. 2017

내 사춘기가 10년만에 미화되고 있다

feat. 볼빨간사춘기

  다들 학창시절 별명 하나쯤 있으신가요? 제 별명은 무려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지어주셨습니다. '잠여름'이라고... 수업시간마다 맨 앞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졸아서요. 뭐 저런 학생이 있나 미워할 만도 한데, 교무실에 갈 때면 선생님들께서 박카스며 비타오백을 하나씩 들려보내셨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하루 네다섯 시간 겨우 자고 공부하는 게 안쓰러워 보이셨던 것 같아요.


  저는 학창시절에 대한 로망이 없습니다. 빈말로라도 '아~ 그때가 좋았지'라고는 못하겠어요. 그 시절 인생의 유일한 재미는 급식표 보는 거였고, 기대되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공부하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좀 쉴 수 있으려나' 였거든요.


  대학 들어와서 만난 친구들은 제 사춘기가 이만큼 우울했다는 걸 모를 겁니다. 즐거울 게 없는 10대 때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여전히 저에게 최악의 악몽은 수능 망치는 꿈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래도 그 시절만의 감성이 있었지'라고 추억보정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볼빨간사춘기를 들으면서부터입니다.


아니, 뭐 이렇게 반짝반짝한 애들이 있지?


  TV를 거의 보지 않는 저에게 어느날 갑자기 차트 1위로 올라온 '우주를 줄게'는 처음 보는 가수의 생소한 곡이었습니다. 볼빨간사춘기? 아이돌 그룹 이름을 이렇게 짓진 않았을 거고, 인디에서 이렇게 한방에 뜬 건가? 신기하다 싶어 들어보았지만 당시에는 다른 곡에 빠져 있어서 별 감흥 없었어요. 그런데 하도 주위에서 좋다좋다 호평이고, 발걸음 닿는 모든 곳에서 들려오길래 뭐가 그렇게 좋을까 싶어 다시 들었습니다. 차암나. 그게 몇 달 전 이야기인데 지금 글까지 쓰고 있네요. 너무 좋아서.


  정규앨범을 한 장밖에 내지 않은 신인 그룹이라기엔 그 앨범 한 장에 담긴 모든 곡이 놀랍습니다. 이름 그대로 볼이 발그레해지는 사춘기 감성을 프리즘에 투과시켜 곡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버스커버스커 이후로 데뷔 앨범이 이렇게 개성 강하면서도 취향 저격했던 기억이 없네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특유의 발음도(썸머파티? 쌈무파티?) 계속 듣다 보니 이 자체로 음악이 완성되는 것 같네, 싶더라구요.


<우주를 줄게> M/V. 뮤비도 예뻐요. 사춘기 감성!

  

  제게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는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입니다. 사춘기가 만들어낸 날것의 감성. 비록 제 것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을 거친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거든요. 학창시절 한번쯤 해 보았던 공상들, 먼지처럼 부유하던 감정들이 러브러브 빔을 맞고 증폭된 느낌입니다. 빛이 가득한 그들의 뮤직비디오처럼, 제 기억 속 사춘기도 자그마치 10년 만에 미화되고 있습니다. 우중충한 시절이었지만 그때 그 예민한 감성은 돌아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야 그 시절이 예쁜 색으로 덧입혀지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글/그림 여름, 사진 및 영상 볼빨간사춘기


<내맘대로 심쿵 포인트>

'우주를 줄게' - 도입부의 우웅-하는 소리가 우주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줍니다 & 널 위해 별도 달도 따 줄게, 라는 고전적인 표현이 이렇게 예뻤나 새삼 놀랍습니다.

'싸운날' -  찐한 연애를 끝내본 사람이라면 통째로 공감될 가사.

'You(=I)' - 어느 순간부터 멜로디 부분에 깔리는 둥둥둥둥 소리가 데이트 속 두근두근 심장소리 같아요.

'심술' - '헝클어진 머리칼을 흩날리며 네게 건네, 조금은 녹아 흘러내린 아이스크림', 이런 사랑스런 말괄량이!

'좋다고 말해' - 3분 부근에서 음이 살짝 올라가는데 '어서 좋다고 말해!'하는 고조된 마음이 느껴져요.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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