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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Feb 19. 2018

길고 힘든 명절 연휴가 끝났다

헤이즐의 잡설

회사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서
가장 힘든 시간을 꼽자면, 단연 명절이다.

이제 전도 부치지 않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명절이 참 힘들다.

처음엔 회사에서 챙겨주던 명절 선물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고
이제는 명절 전부터 앞뒤로 좋지 않을 경기를 걱정하느라 힘이 빠진다.

명절 전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자연히 외주도 줄어든다.
일이 없지 않고 준다는 것이 지난 4-5년 쌓은 내공이라면 내공이지만,
엄마한테 큰 용돈이나 선물을 제대로 못드린 명절에는
일을 핑계로 작업실에서 노숙이라도 하고 싶다.

지난 추석에는 서울에 오지 않고 돈만 부치고,
이번 설에는 서울에 있으면서 돈이 별로 없었다.
엄마가 좀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듯 던진 '봄에는 좀 놀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며칠 묵은 '벌면서 놀아야지'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나도 안다고-!'하며 빽!

'찔려서 그래...'하며 꼬랑지를 내렸는데
엄마는 그게 또 속상한지 등을 토닥토닥 했다.

내 처지가 이렇든 저렇든 나는 엄마의 자랑인데
엄마는 가끔 서운한 것 같고, 나는 자주 찔린다.

체한 것 같은 명절 연휴 끝에는 그래도, 조금의 위로가 있었다.



밀로커피 몽블랑 (사진 이힘찬)


겨우내 짝궁과 가고 싶던 밀로커피에 함께 갔고,
내가 추천한 몽블랑이 맛있다고 해서 무척 기뻤다.

추위에 움츠러있던 우리의 대화도 봄기운에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다.
유난히 혹독했던 이번 겨울,
어찌어찌 넘겼으니 우리에게도 봄날이 오고 있겠지.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주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우리끼리 데이트도 하고.

둘만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길고양이 낚시꾼 (사진 이힘찬)

경의선 책거리 (사진 이힘찬)



익선동 양키스버거


연휴 마지막날 가족 식사를 했다.
친척집 다녀올 때는 묘하게 다들 예민해지는데,
명절이 끝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풀어진다.

명절이 문제긴 문제다. 




연휴 마치고 출근하다 애들한테 들르니
다들 꼬랑지 바짝 세우고 반긴다.
사료통 물통을 누가 꽉 채워주어
나뭇가지로 잠깐 놀아주었다.

너희도 이제 좀 덜춥겠구나.


피-스!


명절이나 연휴에 큰 상관없는 직업이라도
남들 놀고 어디 가는 걸 보면
역시 마음이 뒤숭숭해지는데,
모두에게 공평한 월요일이 돌아왔다.

다들 무언가 후련한 느낌이 들었으리라.

다시 또 매일매일을 살아보기로 한다. 조금만 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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