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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Apr 02. 2019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너굴 작가의 생존기

봄이다.

(그래서 왕벚꽃 사진을 걸어보았다)


봄, 이라고 하면 보통 설레고 예쁜 것들이 떠오른다.

벚꽃잎이 날리는 거리, 얇아진 옷(새 옷), 길가에 피어있는 알록달록한 꽃들, 살랑거리는 바람...


이런 것도 떠오른다.

길고 긴 보릿고개의 끝, 계약, 이직, 일사분기를 그냥 날렸다는 아쉬움...

여기에 꽃샘추위가 곁들여지면, 말라붙은 통장 잔고만큼 건조한 마음이 오그라든다.


겨울은 늘 길다.

벌써 독립군 6년차인데, 해마다 겨울은 길어지는 것 같다.

다섯해를 꽉 채워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얼마전 남편과 나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게 되었다.

포트폴리오 정리, 모두가 '해야지'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는 그 작업을

어딘가 제출하느라 울며 겨자먹기로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 일이 뭔지 돌아보는데 나를 작가라고 어디가서 소개해도 되는가 싶었다.

아직 출간한 책은 단 한 권이며, 퍼블리싱되는 연재(셀프 말고)는 드문드문 하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작업이지만

실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외주원고를 하고 그림이 아닌 다른 컨텐츠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뜻밖의 인디자인


제주에 오기 전까지 나는 그림작가로 포지셔닝하고 싶었다.

독립 후에 그림을 생업으로 온전히(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 먹고 살만큼 버는 정도)하게 되기 까지는 3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 전까지는 마케팅과 언론 홍보 일을 겸하며 '스케치북 값'을 번다고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그 후에는 '내 자신'이 오리진이 되는 컨텐츠를 더 많이 만들고 싶어 이런 저런 도전을 해보았다.


그리고 제주에 이사온 것이 딱 작년 이맘때다.

겨울 보릿고개를 나름 풍족하게 보내고 이사를 와서 그런지 봄바람은 참 따뜻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이 제주로 옮겨지면서 공교롭게도 서울에서의 일이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발주되는 일도 하고 싶었던 나와 남편은 개인 작업을 하며 인내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활의 벽은 높았고, 제주에는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다 각자 자취를 할 때라 생활비는 두 배인 셈이었다. 결혼은 빨리 하는게 좋다...)


제주는 예쁘고 힘들다 (사진 너굴양)


들어오는대로 일을 했다. SNS채널 관리도 하고, 편집 디자인부터 웹포스터 디자인, 교육과정 보조강사, 앨범 디자인 등 자잘한 일을 문어발 식으로 하게 되었다. 남편 역시 각종 촬영과 편집 일이 들어오면 비용에 상관없이 출동했다. (그도 본업은 글쟁이인데 취미인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차도 없던 때라 택시타고, 남의 차 얻어타고, 렌트해서 촬영 현장을 다니느라 힘들었을텐데 묵묵히 전화를 받고 나가곤 했다. 급성 편두통이 와서 끙끙 앓으며 누워있다가 촬영 30분 전에 벌떡 일어나는 걸 보고 혼자 많이 울었다.


하다하다 가을쯤에는 글도 썼다. 인터뷰 글이지만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보도자료를 쓴 이후 처음이었다. 나에게 '원고'는 만화원고였는데 이맘때 쯤에는 '원고'가 글 원고가 되어있었다. 


진격의 인터뷰어 (사진 이힘찬)


이런 일들이 재미없다는 것도, 억지로 했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언제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아 보겠는가. 나를 믿고 맡겨준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가 만드는 컨텐츠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글과 디자인 등의 작업을 하면 외연이 넓어지고 컨텐츠를 둘러싼 제작 프로세스의 이해가 깊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일러스트만 그려서 넘기면 책에 짠!하고 인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었다. 인쇄 작업은 웹과 달리 한 번 발주가 되면 '낙장불입'이라는 아주 쫀득한 맛이 있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하고 흠없는 결과물이 나오면 보람이 그만큼 컸다. 


다행히 내가 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아는 고객들은 내가 '디자인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림이나 만화와 함께 작업을 맡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게 나에겐 돌파구가 된 셈이다. 


그림+글

그림+편집디자인

만화+글


이런 식으로 두 종류 이상의 컨텐츠를 만드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남편이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졌다.

비주얼메모를 곁들여 기사를 쓰기도 했다


남편은 카피를 아주 잘 뽑아낸다. 감성적인 글을 쓰다보니 건조한 글을 쓰는 나에게 '킬링 포인트'를 알게 해 주었다. 스토리도 잘 짜서 스토리텔링이나 콘티는 그의 몫이다. 취미로 하던 사진과 영상도 장비를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며 작업을 이어가는데,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지 리듬감이 필요한 공연 영상이나 연주 영상 편집에 점점 도가 트고 있다. 개인 작업을 할 때는 그림을 그리지만 함께 일할 때는 나를 믿고 그림을 맡기는 등 업무 분장(?)도 나름 잘 되고 있다.


글과 사진, 그림과 영상이 필요한 일이면 둘이 어지간해서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이 사진 찍고 내가 그리고 디자인한 합작품 (교래분교 음반 <우리몬딱소중해>, 2018)


우리 부부는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내면서도

일의 범주만큼은 '만들어 내는 것'에 국한시키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을 우리가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면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말도 잘 어울리지만

사실 가장 가까운 직업은 작가(作家)다.

글을 짓던 그림을 그리던 영상을 만들던 새롭게 만들고 재조합하는 직업이니까.

(심지어 분야도 넓지)


한 분야에 특정한 전업작가가 아니면 어떠한가.

어떨 때는 개인 작업을 하고 어떨 때는 외주 원고를 하지만

끊임 없이 '스튜디오(studio는 작업실, 제작실 이라는 뜻이 있다)'를 돌리고 있다면

작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뭔가 만들어내고 세상에 보여줄 수 있으면 된다.

후지지 않게, 내 개성이 뚜렷하게 담긴 뭔가를

지치지 않고 만들어 내는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면 됐지.



책도 많이 내야지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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