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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Aug 01. 2019

임신 8개월, 경력 단절 되는 소리

너굴양 임신일기

너굴양 임신일기

주말도 휴일도 없던 직장인 시절, 어쩌다 주어진 한가로운 시간에쓸데없이 나의 앞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간 결혼해서 아이도 낳겠지?'까지 생각이 미치고보니 우리 회사에는 결혼한 사람이 없었다. 그 즈음에 유일하던 유부녀 선배는 이직한 상태, 아이는 없었다. 나는 막 서른을 넘긴 상황이었고, 내 위로는 너댓살 차이나는 여자 선배 두 명이 있었다. 언니들도 결혼을 안했고, 여자 후배 서너명도 미혼. 남자 직원이 3배 정도 많았던 구성이라 남자 직원 중에는 총각, 노총각, 유부, 애아빠 다양했다.


'내가 만약 이 회사를 다니며 결혼 한다면...?'

'아이를 가진다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마감되는 스포츠 대회 특성상 주말에 대형 사건이 터지기 일쑤고 잦은 출장, 철야, 야근, 새벽출근, 접대 등 어쩌다 칼퇴라도 하는 날에는 만날 사람도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회사-집을 반복하며 몇 년을 보내던 때였기 때문에 결혼-임신-출산-육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한 후로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결혼을 했고 이미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가 된지 6년 정도 되었다.


부질 없는 이야기지만 계속 회사를 다니다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결혼을 지금까지 할 수는 있었을까 ㅎㅎㅎ) 그 사이 분위기가 변하거나 선례가 생겨 조금 편했을까? 육아휴직 쓰고 나서 전화로 계속 일하고 있었을까?


심란하니까 둥둥이를 보자


아무튼 그때를 기점으로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가정을 여러번 해보았다. 결혼한다면,의 전제는 안해봤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알게모르게 엄마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이가 태어나 2-3년 정도는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자라는 과정도 많이 보고 싶고 안정감도 주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다섯살때 다시 사회로 복귀하신 후 아직도 현역이시다. 엄마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집에만 있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나를 이모집에 맡기며 회사를 다닌 적도 있고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는 저녁밥을 챙겨먹고 엄마 밥상까지 차리던 적이 많았다. 


엄마는 괴로웠던 적도 많았을텐데, 나는 일하는 엄마가 꽤 멋져보였다. (회사 가라고 등떠민적도 있다. 미안해 엄마;;) 성인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엄마는 더 대단해보였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프리랜서가 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도 엄마가 되면 직장인 엄마 보다는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쓸 수 있고 틈틈히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난 엄청난 착각을 했던 것이다.


프리랜서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프리랜서라면 인세수입이나 고정수익이 있거나, 일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백수나 마찬가지고, 수입이 없는 건 곧 생활이 불안정해짐을 뜻하니까.


헛헛할 땐 예쁜 것을 보자



얼마전 한동안 이야기가 오가던 그림책의 편집자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하는 작업도 밀려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와중에 다른 책이라니...일단 전화를 받았다. 


"꺄~축하드려요! 예정일이 언제에요?"


격한 축하를 받았지만 출간 일정은 나에게 만만치 않았다. 내년 여름, 늦어도 가을에 책이 나왔으면 한다는 데 편집자 역시 너무 급한 일정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도 출산 후에는 정말 힘들어했었다는 말과 함께.


임신 이후 할 수 있는 일의 양 자체가 많이 줄은데다가 원래부터 며칠씩 밤을 새며 일을 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나도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맡지 않는게 서로에게 좋다. 그래도 생각은 해보시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최대한 나의 편의를 봐주고 싶어하지만 아이가 나오는 순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나 나나 잘 알고 있다. 이럴땐 내가 쿨한척 하는 것이 나은데 쉽게 '전 못하겠어요'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임신 초기에는 중기까지만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일정을 만들었다. 정작 중기가 되고보니 생각보다 진도가 안빠진 일들이 많아 '이러다 만삭까지 그림 그리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몸이 힘들면 쉬엄쉬엄 하면 되기도 하고, 일하는 자체가 나에겐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출산 이후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이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


이제는 일을 늘일 수 없다. 몇 주만 지나도 몸이 무척 불편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불안한건 어쩔 수 없다. 막달까지 일했던 주변의 많은 지인들을 봤을 때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일은 '나'를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의 일부분이 된다. (물론 출산휴가를 출산 후로 몰아쓰는 것이 훨씬 낫다는 면도 있음-직장인 한정) 육아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경제활동을 꾸역꾸역 하는 이유도 '나를 증명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육아보다 일이 쉽다고 하기도 하고...흑흑)


서울로 올라올 결심을 하기 전 우리 부부는 좋은 제안을 받았다. 제안자는 내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고, 몇 개월의 텀을 두고 서서히 일에 합류하길 바랐다. 세상에 이런 꿈같은 일이? 결론적으로는 그냥 꿈이었다. 이 제안이 거품이 되고 우리는 서울행을 결심했다. 둘만 좋다고 매달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제주살이를 이어가는 건 욕심이라는 판단이 섰다.


풍선같이 된 내 배


사실 이제는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어쩌면 당연하다. 나도 더 일을 많이 하기 힘들고 몇개월씩 필요한 일들은 일정상 아예 불가능할테니까. '아쉽습니다'하고 연락이 오지 않을뿐이다. '일을 못하는 존재=돈을 벌지 못함'이라는 생각 때문에 남편에게도 미안하다. 출산 후 빨리 복귀해서 가정경제에 보탬도 되고 싶다. 내 옷도 사입고 애기 장난감도 사고 싶고, 신세진 지인들에게 밥도 사고 싶다. 뭐 하나 살 때 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남편에게 깜짝 선물도 해주고 싶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 글을 쓰다가 나는 서울로 이사를 왔고, 몇 개월 동안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다. 그리고 출산이라는 거대한 내 인생의 마감 한 꼭지를 앞두고, 다른 책을 작업중이다. 소원대로 만삭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다. (ㅜㅜ)


출산 후에 얼마나 빨리 복귀 할 수 있을지, 연락은 올지 사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기와 가정, 일까지 쳇바퀴를 돌리려면 나와 남편이 얼마나 저글링을 해야 하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이면 좋겠다. 어떤 때에도 삶이 예측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 안갯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을 때가 또 있을까. (근데 애 낳으면 더 그렇다고ㅎㅎㅎ)


아기를 기다리며 출산 준비를 하나씩 하면서,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 꿀렁대는 아기를 느끼면서 참 행복하다. 그리고 그만큼 불안해진다. 내가 얘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일하는 엄마 노릇 잘 할 수 있을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도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감을 누르지 못하면 글을 쓴다. 그러면 좀 나아진다.


기쁜만큼 불안감에 떨고 있을 모든 임산부들 힘내시길.

당신만 그런게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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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뭐라고 많이 읽히고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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