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물을 머금은 글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신춘문예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정말로 못 갈 뻔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 전에야 퇴원했거든요.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였고, 이동 자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는 시상식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내가 갈 수 있는 자리인지, 가도 되는 자리인지, 그런 생각들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때 기자님께서 가급적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더 망설여졌습니다. 결국 마음이 몸을 조금 이겼고, 저는 짐을 챙겼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가능했던 것 자체가 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구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교통편이 생각보다 편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몸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는 병원과 집, 그리고 시상식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겹쳐 있었습니다.
도시에 들어서자, 역시 크다는 느낌이 먼저 왔습니다(사천 촌놈...). 넓은 도로와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 한 번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서부경남의 언론사 사무실들을 방문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규모였습니다. 공간이 크다는 사실이, 그 공간에 모이는 말들과 판단들 또한 크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매일신문사는 대구 중구에 있었습니다. 열한 층인지, 열두 층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위로 꽤 높이 올라갔다는 감각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1층부터 안내가 잘 되어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괜히 허리를 한 번 더 펴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나서 본 소감은 마치 호텔 로비 같았습니다. 조명이 밝았고, 바닥은 정돈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낮았습니다. 그 사이사이를 지나가보니 원형 탁자마다 당선자와 내빈의 이름표가 놓여 있었고, 그 풍경이 잠시 현실감 없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시 당선자분과 그 가족분들과 같은 테이블에서요.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할머니와 함께 왔을 겁니다. 그리고 작년에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게 유난히 다정했던 동료도요. 그분들은 제가 잘했을 때보다, 버티고 있을 때 더 자주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념을 거스르지만 않으면, 결과와 상관없이 괜찮다고 말해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는 이제 겨우 아홉 달입니다.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녀왔고, 아내를 제외한 가족들에게는 시상식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실력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제 노력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이 함께 있었으니까요. 몸, 운, 타인의 배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까지.
언젠가 정말로, 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좋은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때는 많은 분들에게도 말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을 받으러 올라온 분들은 대체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표정들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저는 아직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상패를 받을 순서도 아니었는데, 혹시 놓칠까 봐 두 손을 먼저 준비하고 있던 제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조금 우스웠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시조 당선자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들이 글을 쓰는 일이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도 그 말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단상 위에 올라섰을 때, 눈물이 날 뻔했던 이유는 그 말들과 제가 써온 글 사이에 생긴 작은 틈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쓰던 일기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읽힐 가능성이 있었던 글들은 대부분 바닷물을 머금은 맛이었습니다. 짠맛이 빠지지 않은 글들이었고, 쉽게 마를 수 없는 글들이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여러 선배 기성 작가분들의 명함을 받았습니다. 좋은 글을 써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격려라는 것도, 기대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바닷물을 머금은 글이 아니라, 풀향을 잔뜩 머금은 봄의 내음을 담은 글을요.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해지기 위해 쓰는 글을요.
그 향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용히 닿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