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장면에서 멈췄을까

- 체크리스트, 장면에서 전환하기

by 네로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나는 늘 장면에서 멈췄다.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장면이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충분함이 문제였다. 앞에 말했듯이 수필을 쓰다 보면, 하나의 순간을 끝까지 붙잡는 법을 먼저 배운다.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가 따라올 수 있도록, 말하지 않은 것을 남겨두는 글쓰기다. 그렇게 쓰면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완결이 된다. 여운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장면이 강하면 이야기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소설 속 이야기는 움직이기 때문에 장면이 필요해진다. 움직이지 않는 이야기 속의 장면은, 아무리 잘 써도 풍경에 머문다. 200자 원고지 기준 15~20매를 쓰다 80~100매를 쓰려하니, 이야기가 움직이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장면 안에서 인물을 보호하려 했다. 인물이 더 다치지 않도록, 더 어긋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수필에서는 그것이 작가의 윤리처럼 느껴졌지만, 소설에서는 그 보호가 인물을 정지시켰다.


장면에서 멈춘다는 것은, 결국 선택을 미루는 일이었다. 인물에게 무엇을 하게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분위기와 감정으로 시간을 벌고 있었던 셈이다. 그 시간은 아름다웠지만,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장면을 이렇게 점검하기로 했다. 이 장면이 소설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수필에 머물러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장면이 소설로 작동하는가?”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점검표다.

image.png 체크리스트

장면을 쓰고 난 후 고치기 전에 이 표를 한 번씩 확인한다.


끝맺음

나는 이제 장면을 이렇게 점검한다. 이 장면이 끝났을 때, 인물은 무엇을 하게 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 쓴 장면이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났다.


인물을 움직이려 하면 할수록, 문장이 자꾸 나를 말렸다. 너무 솔직해서, 너무 이해가 빨라서, 너무 잘 정리된 문장들이 인물이 다치기 전에 먼저 멈추게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부딪힌 문제는 이것이었다.

솔직한 문장은 왜 소설에서 위험해지는가.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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