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문장은 왜 소설에서 위험해지는가

by 네로

*표지의 사진은 AI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나는 솔직한 문장을 좋아한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망설임을 덜어내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문장들. 다만 그 솔직함을 그대로 소설에 가지고 오니 문제가 생겼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종종 인물보다 먼저 고백했다. 인물이 아직 선택하지도 않은 감정을, 작가인 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왜 괴로운지,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지. 그렇게 문장이 인물의 속도를 앞질러 나가면, 인물은 더 이상 움직일 이유가 없어졌다.


고백은 선택을 대신한다. 이미 다 말해버린 인물은, 더 이상 행동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독자는 그 인물을 이해했고, 작가는 그 이해를 확인했다. 그 순간, 소설은 한 발짝 멈춘다.


수필에서는 그 멈춤이 완성이었지만, 소설에서는 그 멈춤이 종착지가 되어버렸다.


솔직한 문장이 위험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해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독자가 인물을 너무 빨리 이해하면, 그 인물에게 남은 시간은 줄어든다. 오해할 틈도, 실수할 여지도, 엇나갈 공간도 사라진다.

나는 인물을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문장을 정리했다(내 소중한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나타내었기에 생긴 부작용). 이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은 옳았고, 논리적이었으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인물을 고립시켰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인물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갈등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만 남고, 이해만 남은 이야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해가 빠른 문장은 이동을 멈춘다.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음 장면으로 갈 이유는 희미해진다.


그래서 소설에는 어느 정도의 무지가 필요하다. 이 무지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다. 인물이 자신의 감정을 다 알지 못하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며, 결과를 오해한 채 선택하는 상태.


수필에서는 작가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경험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작가가 가장 많이 알아서는 안 된다. 작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수록, 인물은 그 지식에 끌려다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인물이 모르는 것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왜 이 선택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그냥 하게 두었다. 나중에 틀릴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는 선택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문장은 불안정해졌고, 설명은 줄어들었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설은 인물이 배워가는 이야기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반복하는 이야기는, 변화가 없다. 변화가 없는 이야기는 이동하지 않는다.


나는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문장을 의심한다.

이 문장이 너무 솔직하지 않은지,

이 문장이 인물보다 앞서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문장이 이해를 먼저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솔직함이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소설에서는, 솔직함이 도착지가 아니라 지나쳐야 할 지점이라는 점이 문제다. 인물이 말하지 않은 것을, 문장이 대신 말하는 순간 소설은 멈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금 덜 솔직한 문장을 선택한다. 조금 더 늦게 이해되는 문장을 남겨둔다. 인물이 틀릴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확보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만 소설은 앞으로 간다.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문장 위로.


그래서 나는 글을 직접 전문적으로 배워보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플롯보다 먼저 인물이 틀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