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들 말한다. 하나는 플롯을 먼저 짜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장면을 세세하게 적은 뒤, 그 장면에서부터 앞뒤로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이다.
나는 두 번째 방식을 선호했다.
글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단편소설을 쓸 때는 플롯을 따로 짜지 않아도 이야기가 비교적 술술 풀렸다. 장면 하나를 붙잡고 끝까지 밀어붙이면, 그 안에서 인물이 움직였고 이야기가 생겼다.
실제로 나는 2주 동안 세 편의 단편소설을 이 방식으로 썼다. 군에서 많이 시행하는 바우처 택시를 소재로 한 행복택시, 보릿고개를 건너는 농부의 삶을 그린 이야기, 그리고 막 발령을 받은 신규 소방관의 이야기였다.
그때의 나는, 장면만으로 단편소설을 적어내고 있었지만, 첫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에 말했던 것들처럼, 이야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장면은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야기가 멈춘다면, 구조를 세우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서 플롯을 떠올렸다. 소설 쓰기 강의에서 말하는 플롯의 요소들을 정리했다. 시작과 사건, 전환과 결말. 인물의 결핍과 변화, 되돌릴 수 없는 지점. 종이에 적어두니 이야기는 그럴듯한 모양을 갖췄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플롯을 세워두고 다시 문장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이 갑자기 식었다. 문장은 정확해졌지만 살아 있지 않았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분명했지만, 쓰고 싶다는 느낌은 빠르게 사라졌다. 장면은 계획대로 움직였고, 인물은 예정된 위치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걸음이 너무 단정했다.
수필에서는 문장이 스스로 결정한다. 지금 멈출지, 더 갈지, 어디까지 말할지. 하지만 플롯을 들여온 뒤부터 문장은 자주 허락을 구했다. 이 문장을 지금 써도 되는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그 질문이 많아질수록 문장은 조심스러워졌다.
마치 플롯이 문장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기성 소설가들의 영상을 보고 깨달은 건, 플롯의 유무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플롯을 지도처럼 썼다는 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길이 맞는지, 어디서 꺾어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두고 그 길만 따라가게 했다. 그러니 문장은 더 이상 길을 찾지 않아도 됐고, 인물은 방황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재 내가 쓴 소설에서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문장이다. 정말로 문장살인마와 다름없다. 문장이 죽으니, 인물은 살아 있는 척만 했다.
그래서 나는 플롯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문장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난간으로.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되,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인물이 정하게 하는 장치로.
앞으로는 이렇게 써보려 한다.
1. 처음부터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가 반드시 지나가야 할 하나의 지점만 표시해 둔다.
2. 그 지점에 도착하는 방법은 문장에게 맡긴다. 문장이 위험해지지 않는 한, 플롯은 말을 걸지 않는다.
3. 플롯을 소설의 ‘설계도’가 아니라 문장이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 난간으로 쓰기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