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나는 소설을 쓰면서 점점 감정을 쓰지 않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감정을 잘 쓰고 싶었다. 인물이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슬픈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감정을 직접 쓰기 시작하는 순간, 이야기는 자주 멈췄다. ‘슬펐다’라고 쓰는 순간, 독자는 더 이상 슬퍼질 필요가 없었다.
‘두려웠다’라고 적는 순간, 인물은 이미 그 감정의 끝에 도착해 버렸다. 그 뒤로 움직일 여지가 사라졌다. 감정이 설명되는 만큼, 장면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치면서 소설에서 감정은 도착지가 아니라 압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에 가깝다. 그런데 그 힘을 문장으로 먼저 규정해 버리면, 인물은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다. 이미 무엇을 느끼는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쓰는 대신,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남기기 시작했다. 인물이 울었다고 쓰는 대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작을 적었다. 괴로웠다고 말하는 대신,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을 남겼다.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이상 없음’을 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설에서 인물들은 거의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보고를 하고, 판단을 내리고, 절차를 따른다. “이상 없음”이라는 문장은 감정의 부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감정을 말하지 않기 위해 선택된 언어다. 그 문장이 반복될수록, 독자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왜 아무도 이상을 말하지 않는지, 왜 확인으로 끝내는지, 무엇이 누락되고 있는지를 독자가 스스로 채우게 된다. 감정은 문장에 적히지 않았지만, 장면 사이에 고여 있었다.
이때 중요한 건 절제나 미학이 아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감정을 독자에게 넘기는 것이 목적이다. 작가가 감정을 다 말해버리면, 독자는 이해만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감정을 남겨두면, 독자는 그 자리를 통과하게 된다. 이해가 아니라 경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 점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1. 이 감정을 지금 꼭 설명해야 하는가
2. 아니면 이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행동만 남겨도 되는가
3. 이 문장은 인물의 마음을 대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물이 선택한 언어인가
이 질문에 솔직해질수록, 문장은 짧아졌고 장면은 더 오래 남았다. 수필에서는 감정을 말해도 괜찮다. 오히려 말해야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감정이 말해지는 순간, 인물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이미 해석된 상태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쓰려고 한다. 감정을 설명하는 문장보다, 감정을 견디는 동작을 남기려고. 마음을 보여주기보다, 마음을 숨기려는 언어를 기록하려고. 감정은 쓰는 것이 아니라, 남겨지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렇게 쓰다 보니, 몇 가지 기준이 남았다. 누군가에게 가르치기 위해 정리한 것은 아니고, 문장 앞에서 자주 멈추는 나 자신을 위해 적어둔 메모에 가깝다. 나는 이제 감정을 적으려 할 때마다 한 번 더 멈춘다. 이 감정을 지금 말해버려도 되는지, 아니면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남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감정을 쓰지 않기로 할 때, 대신 남겨야 할 것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감정 대신 남길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인물이 선택한 행동이거나,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이거나, 설명 없이 반복되는 언어다.
‘슬프다’는 말 대신 고개를 숙이는 시간.
‘불안하다’는 말 대신 다시 켜졌다 꺼지는 화면.
‘괜찮다’는 말이 반복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선택.
이런 것들이 쌓이면, 감정은 문장 안이 아니라 장면 안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이렇게 정리한다.
이 문장은 인물의 마음을 대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물이 마음을 숨기기 위해 고른 말인가.
이 감정을 지우면 장면이 비어 보이는가, 아니면 오히려 더 많은 여백이 생기는가.
이 감정을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독자는 이미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감정 문장은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에 가깝다. 소설에서 감정은 설명될 때보다 회피될 때 더 정확해진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대신 독자의 쪽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감정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남겨두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