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이 질문을 만들 때

- 이야기가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by 네로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단편소설의 경우, 장면 하나에만 의지해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 완성될 거라 생각을 했었다. 공기의 온도와 손의 떨림, 바닥의 냉기 같은 것들을 정확히 붙잡으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묘사는 선명했고 문장은 매끄러웠으나, 장면이 완성되어도 다음은 오지 않았다. 장면은 서 있었고 이야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멀리서 돌아보니 읽는 사람은 멈추었고, 자리에서 문장을 다듬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장면을 쓰고 나면 한 가지를 확인하게 됐다. ‘이 장면 뒤에 질문이 남는가.’ 질문이 남지 않으면 그 장면은 아직 소설의 장면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괜찮아’라고 말했다”는 문장은 정보를 전달할 뿐이다. 인물의 상태는 정리되고 장면은 닫힌다. 하지만 여기에 문장을 하나 더 붙이면 방향이 달라진다.

“그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때 장면은 닫히지 않는다. 왜 내려놓지 않았을까, 정말 괜찮은 걸까, 무엇을 말하지 않은 걸까. 질문이 생기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앞으로 기울어진다. 잘 썼다는 느낌만 남기고 끝나는 장면은 독자를 기다리게 하지 못한다. 소설에서의 장면은 설명을 남기기보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남겨야 한다. 완전히 정리된 장면은 다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어긋난 장면은 독자를 붙잡는다. 내 소설 〈이상 없음〉에서 반복되는 말도 그렇다. “이상 없음.” 상황을 정리하는 보고의 언어가 나오는 순간 현장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독자에게는 질문이 남는다. 정말 이상이 없었을까, 보지 않은 건 아닐까, 확인하지 않은 채 돌아선 건 아닐까. 이 문장은 사건을 닫는 동시에 사건을 열어두는 말이 된다.


장면을 쓸 때 끝 문장을 의심한다. 너무 단정하면 지우고, 설명이 붙어 있으면 떼어낸다. 조금 모자란 상태로 남겨둔 빈자리에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은 인물을 움직이게 만든다. 수필에서는 장면이 닫히고 여운이 남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에서 여러 번 말했듯, 소설에서는 장면이 닫히는 순간 이야기도 멈춘다.


말이 덜 된 자리, 설명되지 않은 선택, 너무 빠른 판단, 혹은 너무 늦은 침묵. 나는 장면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끝낸다. 그 틈이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이 다음 장면을 부른다.


질문이 생기면 이야기는 비로소 '다음'이라는 시간을 얻는다. 수필에서의 장면이 하나의 완결된 세계라면, 소설에서의 장면은 다음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컵을 내려놓지 못한 소방관의 손은 다음 장에서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를 지켜보던 타인의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이상 없음"이라는 보고를 마친 인물은 돌아선 복도에서 방금 자신이 외면한 무언가를 떠올리며 멈춰 설 것이다. 이야기가 자라는 것은 바로 이 '멈춰 선 지점'에서부터다.


수필을 쓸 때는 대체로 문장의 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삶의 한 조각을 단정하게 갈무리했다는 충만함. 그러나 소설을 쓰며 깨닫는 것은, 소설가의 일은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물을 계속해서 곤경이나 의문 속에 방치하는 일에 가깝다는 점이다. 작가가 먼저 마침표를 찍어버리면 인물은 그 자리에서 박제가 된다. 인물을 살게 하려면 그가 서 있는 바닥을 끊임없이 흔들어야 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빈틈은 작가가 채우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그 틈에 자신의 의심과 상상을 밀어 넣을 때, 이야기는 비로소 작가의 손을 떠나 스스로 자라기 시작한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애써 공들여 쓴 문장을 다시 읽으며, 너무 친절하게 닫힌 문은 없는지 살핀다. 잘 쓴 문장보다 필요한 문장을 남기려 한다.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기울어질 수 있도록.

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