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4 10:22 일기
덜컹ㅡ
소리를 내며, 할머니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침대에 누운 채 병실을 떠나기 전,
그 순간 할머니의 손에 아주 작은 힘이 들어갔다.
나는 아이처럼 기뻤다.
정말, 너무 기뻤다.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작은 힘 하나에 온 마음을 걸었다.
사고 직후 6시간 동안
병원 세 곳을 전전하셨다.
골든타임은 이미 한참 지난 뒤였고,
분노와 억울함이 가슴을 할퀴었지만,
그때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할머니만 살아나신다면, 나머지는 다 괜찮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술은 잘되지 않았다.
‘지주막하출혈’ — 소위 ‘거미막하출혈’이라고 불리는 뇌출혈.
빠르게 수술해도 후유증이 크다는,
가장 위험한 출혈 중 하나로 의사 선생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에는 깨어나실 거라 믿었다.
1주가 지났을 때, 의사는 “이제, 깨어나셔야하는데”라고 했다.
2주가 지났을 때는, “의식을 되찾아도 일상생활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미 뇌의 여러 부위가 손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주차가 되는 날, 우리는 병원을 옮겼다.
가천대 길병원.
그곳에 큰고모가 근무 중이라 자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 받은 말은 더욱 참담했다.
의식을 되찾을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 말을 듣고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구급차로 초기에 옮긴 병원,
수술을 미뤘던 대학병원,
또다시 전원을 지시한 또 다른 병원.
누구 하나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닐까.
분노는 커졌지만, 슬픔 앞에 무력해졌다.
가해자는 무면허 운전자였다.
사고는 명백한 100:0 과실.
하지만 보험사는 경추 척수를 다친 아버지에게
합의금으로 350만 원을 제시했다.
진단서상의 8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담당자는 계속 바뀌었고,
중환자실의 소모품은 보호자가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가해자로부터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얕은 지식으로 밤을 새우며 알아냈다.
한 번 보험사와 합의해 버리면, 이후 할머니의 개호비와 치료비는 청구할 수 없다.
손해사정사 또한 마찬가지이고 가족 모두를 위한 길은 소송 밖에는 없었다.
할머니는 75세.
보험측면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사망나이는 79세 기대여명은 4년.
그 4년 동안 깨어나시지 않으면,
계속 병원에 계셔야 한다.
그 사실이 마음속 벽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가천대 병원은 말했다.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퇴원을 권유받았다.
요양병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험사 직원은 “주소지가 시골이니까 근처 병원이 낫다”며,
요양병원 전환은 한 번만 가능하니 신중히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재활이 가능한 병원을 중심으로
반나절 넘게 전화를 돌렸다.
입원상담 담당자는 대부분 말했다.
“정확한 진단이 나온 후 다시 상담해 주세요.”
나는 자주 울었다.
정말 자주 울었다.
가슴에서 복받치는 말을 누르며,
의료용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모든 걸 외웠다. 모든 걸 물었다.
“75세 여성, TA환자, SAH로 인해 현재 코마 상태.
자가호흡 가능하고 하루 약 15회 흡인, 엘튜브 및 폴리 사용 중. 의식 회복 시 즉시 재활 가능 여부 문의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인천에 위치한 두 병원 중 하나로
겨우 옮길 수 있었다.
나는 바랐다.
이 모든 게 욕심은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그래도, 기대해도 된다고 말해주길.
하지만,
시간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처음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를 향한 내 마음은
차트 위 몇 줄의 의학용어 하나 바꾸지 못했고,
나의 기도는
할머니의 세포 단 하나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도 자꾸만 꼬이고 엉켰다.
조금만 길어지면
감당할 수 없이 지저분해지고,
나는 자꾸 마음을 잘라냈다.
마음이란,
정말이지 무능하다.
부유하는 먼지처럼,
무력하고, 속수무책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오늘도 거울을 바라본다.
그리고,
단 하나를 기도한다.
부디,
내 마음이 산산조각 부서지지 않기를.
부디,
흩날리는 눈꽃송이에도
상처받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