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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규 Oct 31. 2020

구엘공원의 비밀

기왕이면 유료보단 무료

처음부터 얘기했지만 내 목표는 산책이었다. 나는야 스페인에 산책 온 사람.

여행의 첫 목적지인 구엘공원은 유료존과 무료존이 나누어져 있는데, 포토스폿이 있는 유료존의 입장료가 10유로(약 13,000원)이었다.

검색할 때 꼼꼼하게 파 헤지기 좋아하는 내 눈에 띈 것이 있으니.. 바로 8시 전 입장 시 입장료가 무료! 입장만 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

가족이랑 왔으면 여행은 쉬엄쉬엄 하는 거라며 무료입장 같은 건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나는 지금 자유로운 홀몸(?)이 아닌가..?

절약하는 짠순이 기지를 발휘해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쾌거를 이루었다.


짠순이>집순이>잠순이...


너무 바쁜 일상에 지쳐 곯아떨어질 때면 가끔 우거진 숲을 혼자 거니는 꿈을 꾸었다.

그만큼 산책이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일 끝나고 아주 오랜만에 하는 산책에 설레어 대충 세수만 하고, 장시간 비행으로 떡진 머리에는 베레모를 쓰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직도 버스 표시와 지하철 표시를 몰라서 되돌아와 호스텔 직원에게 한번 더 물어보고 출발했다.

버스정류장에는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해 공기는 차가웠고, 출근하는 사람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내가 스페인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이 순간이 가장 좋다. 낯선 국가의 아침, 낯선 사람들, 낯선 공기.

그 속에 나 홀로 여행자.

아참, 그러고 보니 스페인의 교통은 1회 이용권보다 10회로 묶인 <T-10>을 사는 게 반값이나 저렴하다.

바로 옆 지하철로 뛰어가 T-10을 끊고 다시 후다닥 돌아와 버스에 탑승했다.

여차저차 구엘공원 앞 정류장에서 하차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잠깐 지도를 켜는 순간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구엘공원은 저쪽이라며 방향을 가르쳐주셨다.

도착 첫날부터 경험하는 스페인 사람의 친절함에 아침 기분이 좀 더 상쾌해졌다.

무료입장 시간까지 10분 남짓 남았고, 도대체 유료 구간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참을 찾아다녔다.

나 말고도 중국인 관광객도 같이 헤매느라 서로 인포메이션도 뛰어가 봤는데 닫혀있었고, 2분 남짓 남은 촉박한 상황에 공원 청소부에게 물어 물어 돌아온 대답은

“여기가 유료존이야!” 아.. 이미 들어온 거였구나.


역시 오길 잘했어!

가우디에 대해서 잘 모르고 왔지만, 공원을 걸으면 걸을수록 어릴 때 상상력으로 그려볼 만한 것들이 실현된 공원이라 신기함 그 자체였다.
지루한 곳 없이 예쁘고 독특하며 정성이 느껴졌다.
파도치는듯한 동굴이라고 불리는 파도 동굴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바위돌이 쏟아질 듯 박혀있는데
이 모든 것이 철근 하나 박지 않고 조립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완벽한 자연주의 설계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한참 넋 놓고 걷다 보니 포토스폿으로 유명한 십자가 조형물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왔다.
새파랗고 넓은 하늘이 온몸에 자유로움을 불어주었다.

사람의 허리 곡선에 맞게 설계되어있으면서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게 디자인된 세상에서 가장 긴 공원 벤치.
조깅하는 사람들과 가우디가 만든 의자에서 아침을 먹는 관광객들로 맞이하는 구엘공원의 아침.


구엘공원의 비밀

사실 가우디는 구엘공원을 지을 당시 공원 속 주택단지를 계획했다. 지중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여러 가지 비용이나 거리상의 문제로(구엘공원은 산 언덕에 있고, 당시 교통수단인 마차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는데 반나절 걸렸다고 한다.) 분양을 받은 사람은 딱 한 집. 그 외엔 모두 미분양되었다.

공원 초입구에는 가우디의 집도 있는데 이곳도 별도 입장료를 받는다.

후기가 거의 없고 나중에 만난 여행사도 별 볼 거 없다며 손사래를 하며 만류했지만, 나는 예술가가 살던 방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집에 들어가 보니 각종 가우디가 만든 식탁과 특유 곡선의 의자 그리고 소파들.

2층으로 올라가는 조명과 그 당시 최고로 귀한 건축재료였다는 우아한 색감의 보라색 대리석.. 정말로 너무 아름다웠다.

침실에는 거대한 옷장과 동화에 나올 것만 같은 높고 얄팍한 싱글 침대가 있고, 옆방에는 기도실이 있었다.

나는 한 시대를 대표한 예술가의 삶을, 집을 통해 잠시나마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라 짧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공원의 마스코트라고 불리는 도마뱀 뒤로는 주민들을 위한 재래시장을 만들어져있다. 한 번도 시장이 열린 적은 없지만..

또 스페인이 심각한 가뭄에 시달려 한때 잔디에 물을 주면 벌금형이 내려졌다는데,

가우디는 시장 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기둥으로 통과하여 지하 탱크에 모이도록 설계해 그해 심한 가뭄 속에서도 도마뱀 분수는 물이 졸졸 나왔다고 한다.

건축가의 진면모다 정말. 박수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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