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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할게요

눈에 보여야 진심이라나요. 주고받아야 진심이니까요. 

마음이 복잡커나 생각이 많을 떈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편지는 더더욱 그렇다.  머릿속이 삼라만상으로 까맣게 타들어갈 때 무작정 펜을 굴리기 시작하면 이말저말 서두없는 마음이 이방향 저방향 제멋대로 그어진다. 쓰는 그리고 읽는 사람도 어디로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는 백지아닌 백지가 되고, 그저 선물의 +a같은 곁다리이자 '요정도의 정성도 더해봤어'라는 포장지마냥 1300원 카드가 제값을 하지 못하고 겉돌곤 한다. 


이른 오후께 광화문 언저리 커피숍에서 볕을 잔뜩 받으며 퇴사를 앞둔 친구를 향해 편지를 썼다. 대충 쓰고싶지 않았다. 어렴풋이나마 친구가 어떤 마음일지 공감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몇년 전의 퇴사를 꺼내보았다. 다들 달려가는데 나만 잠시 멈추는 마음이었다. 다시 시작해 에너제틱하게 뛰어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따윈 들지 않았다, 다만 내가 '늦어진다' 라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누구는 나와 동갑인데 벤츠가 있고, 동기인 누군가는 서울에 아파트가 있었고 누군가는 이직에 성공해 S사의 마케팅 대리로 빛나고 있다며 스스로에게 이유없는 채찍을 휘둘렀다. 쉬어가야 할 시간을 오히려 이유없는 매질로 깊은 호흡을 방해했던 그런 내가 있었다. 그 고됐던 마음을 고스란히 글로 적으며 그녀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깊이 살피라 했다. 남들은 한번이 어려울 귀하고 아름다운 시절일거라며. 


퇴사 D-2인 그녀와 치킨을 먹으며 소회를 이야기했다. 나의 두 배의 시간을 회사에 머문 그녀의 감정을 쉽게 헤아릴수는 없다. 시원 텁텁 서운 막막, 8글자로 모든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같게 있을지 없을지 모를 '꽃길'을 걱정했다. 퇴사 후 3개월, 넉넉히 보낼 자금까지 마련해둔 그녀는 그럼에도 '마이너스'를 경계했다. 월급이 끊긴다는 의미는 더이상의 +가 없다기보다는 -가 시작된다는 불안이 더 거센가보다. 


그 어떤 노이즈 없이 진심을 가득 담아 써내려간 편지와 아주 소소한 선물을 내밀어봤다. 퇴사 선물을 받을 때 만년필, 책, 로션 등등 모두 고마운 선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을 담은 꽃과 편지가 가장 가슴에 닿았다. '꽃길 걸으시죠!'라는 상투적인 멘트 말고 '항상 연락하고 지내자'와 같은 마음이 더 친근하고 다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편지에 감정과 기억과 추억을 꾹꾹 눌렀다. 그녀가 느낄 불안함을 퇴사에서는 선배이기에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3년 남짓 함께 나눴던 그 곳에서의 시간을 다시 한 번 기리고, 그녀가 만날 아름다운 백수의 순간들을 더 깊숙이 보냈으면 하는 다정한 마음으로. 


그녀는 울었다. 퇴사에 늘 아쉬움을 남기는 좋은 사람들과 이별의 식사를 나누며 단 한번도 눈물을 남기지 않았다는데 고작 떠난 후배의 편지에 눈물을 훔쳤다. 펜을 들고 편지를 적을 때 마음이 동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서로가 진심을 교감할 때, 관계는 두터워진다. 또 각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바삭바삭한 현실을 살아내며 감성과 관계, 마음은 숭숭 구멍뚫린 현무암마냥 허송하게 굳지만 종종 건네거나 전해주는 마음들은 내가 충만하게 사람들과 감정을 부대끼며 살아내고 있다는 만족을 남겨준다.


한 어른스러운 내 친구는 말했다. 진심은 눈에 보여야 진심이라고. 안보이는데 어떻게 아냐고(!). 

장톡보다는 손으로 직접 쓴 마음이, 손바닥만한 카드보다 횡설수설 써내려간 긴 편지가 더 사랑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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